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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비장애인 형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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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238회 작성일 10-09-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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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소원 중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을 부를 때“빛나 엄마! 빛나 아빠!”라고 불러주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오빠가 한 명 있다. 친척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둘째인 나보다는 첫째인 오빠의 이름을 넣어 부모님을 불렀고, 항상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치~ 빛나 엄마, 빛나 아빠 인데…’

내가 장애를 입기 전 까지 오빠는 부모님께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도 털어 놓을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라이벌 이었다. ‘형 만한 아우 없다’ 는 옛말처럼 공부도, 운동도 오빠를 이길 수는 없었지만, 우리 남매는 매일 밥상에서 까지도 먼저 먹는 사람이 승리 하는 전쟁을 벌이곤했다.

그렇다고 우리 남매가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니었다.“어머~ 쟤네 남매는 싸우지도 않네?”사람들은 두 살 차이의 우리 남매가 항상 의좋은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그 영향은 부모님의 맞벌이 였을 것이다. 부모님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서로 더 챙겨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오빠와 나는 동등한 입장의 남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빠에게 항상 도움을 구하는 장애인 이었고, 오빠는 나에게 항상 도움을 주는 비장애인이었다.

오빠가 돌아왔다!
외국에서 6년째, 공부 중인 오빠는 방학을 이용해 잠시 귀국했다. 2년 만에 귀국하는 오빠를 만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나에겐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사실 어릴 적 나는 오빠에게 시기와 질투, 같은 게 있었다. 여느 부모님이나 그러하겠지만, 제일 큰 자식에게 관심이 많다. 큰 자식이 잘되어야 나머지 자식들도 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역시 둘째인 나보다는 첫째인 오빠에게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의 관심 속에서 오빠의 성적은 나보다 항상 높았다. 나는 성적이 나올 때마다 부모님께 소리쳤다.

“치~ 오빠처럼 신경써주고 그러면 누가 못해? 나는 그럼 전교1등이 아니라 전국1등도 하겠네!"

그런데 내가 장애를 입고 나서 부터는 상황이 역전됐다. 그런 부모님의 관심에 좌지우지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귀국하는 오빠에게 그 관심이 빼앗길까봐 불안해졌다.

오빠가 머무른 3주의 시간이 정말 짧다고 느껴질 정도 였다. 오빠는 시간을 내어 온 가족이 함께 가족여행도 다녀오고, 뮤지컬 구경 그리고 활동보조 선생님이 휴가 가신 틈을 타 내 일일 활동보조인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자조모임을 할 때, 옆에서 도와주면서 내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또 한의학을 전공하는 오빠는 나의 고질병을 치료해주기 위해 매일 밤, 안마와 침을 놓아주었다.

오빠는 다시 떠났지만, 생각해보면 오빠가 오기 전 내가 걱정했던 점 보다는 반가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또 내가 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 부럽기도 했지만, 고마웠다. 그 동안 나의 몫까지 해주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장애인에게 비장애인 형제는 적으로 느껴질 수 있고, 비교 대상이 될 수 도 있다. 세상에서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제일 가까운 게 피를 나눈 형제인만큼 장애인, 비장애인 이렇게 편을 나누기 전에 서로 믿고 의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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