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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활달해진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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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211회 작성일 10-08-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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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리 밝으냐

사람들은 나를 만나 어느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에게 묻는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쩜 그렇게 밝고 긍정적으로 지낼 수 있느냐고. 그것이 원래부터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밝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왔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지내려고 노력하는 나지만, 그런 질문을 여러 번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역시도 이런 내 성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나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는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살아왔을까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40년 동안의 내 인생을 자세히 기억해 내기는 물론 어렵겠지만, 그간의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기고만장 초등시절

내 이름은 ‘은아(恩兒)’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셨던 부모님의 큰 딸로 태어난 나는 출생시 의료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되었다. 하여 태어날 첫 아이의 이름을 당신들의 이름 한 자씩을 따서 지으려고 했던 기대와 다르게 하느님의 은혜로 태어난 아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은아’라는 이름, 예쁘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어렸을 적 이 이야기를 부모님에게 들었을 때부터 난 내 이름이 더 좋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어렵사리 태어난 나는 부모님의 무한한 기대와 사랑 속에서 바르게 잘 자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장애가 있는 내가 그것으로 인해 위축되거나 힘들어 하지 않도록 남동생들과 똑같이 자랄 수 있게 해 주셨으며 그로 인해 동생들과 밖에 있는 시간도 많아져 아주 자연스럽게 외향적이고 활발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니는 부모님들 덕에 집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는 가까이에 사는 주위 사람들과도 무척 친하게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수업시간에 발표하기를 어려워하고 나서서 자기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난 시키지도 않는데 교탁 앞으로 나가 문제를 풀려고 하거나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대는 꽤 적극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거기다가, 초등학교 시절 입학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나를 걱정하신 부모님들께서 날 배려해 나와 같은 학교에 재직하고 계셨으니, 그야말로 초등학교 때의 내 모습은 완전히 기고만장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러한 기고만장함을 꺾이게 할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낯선 환경에 놓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수원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초등학교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중학교에 다녀야 했으며 지금처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이지 않아 장애인을 처음 접한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들과의 조금은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더 공부에 전념하라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더욱 공부에 열중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예전과는 달리 어느새 나의 성격은 조금씩 소극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사춘기를 겪을 나이니 더더욱 그랬겠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가고 있던 중 고1 여름방학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떠 보니 내가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는 것 외에는…. 그 사고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머리를 다쳐 병원에 두 달이나 입원해 있어야 했으며, 그 동안의 학교 수업의 부족과 퇴원 후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하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공부에 대한 욕심을 어느 정도 접어야 했으며 결국은 원하는 대학진학까지 포기한 채 장애인 직업재활 학교에 입학할 상황이 되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이전부터 조금씩 소극적으로 변해 간 내 성격은 그때 결정적으로 부정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 같다.

의기소침했던 시간들

접해 있는 상황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또 그 당시에는 주위사람들보다 내가 훨씬 어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이들의 말을 더 잘 듣는, 남들이 보기에 꽤나 착한 아이로 보여졌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같이 공부했던 다른 친구들의 취업 소식을 들을 때나, 나이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는 나 자신에 대해 무척이나 부정적이고 의기소침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많은 곳에서의 직장 생활과 여러 사회 활동을 하면서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들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스물아홉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작년까지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잘 마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고교 졸업 이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 상황들이 결국 나로 하여금 장애인의 직업재활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그 결과 이제는 내가 원하는 모습에 어느 정도 가깝게 다가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즉, 당장 힘든 현실이 나중에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에 현 상황이 힘들다고 너무 속상해할 필요도, 부정적일 필요도 없다는 것이 요즘 나에게 드는 생각이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나

얼마 전에는 2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언니를 만났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니에게 옛날의 나는 어땠었고 지금의 난 어떻게 변해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언니는 과거의 내가 항상 바른생활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나보다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듣는 수동적인 아이었던 반면,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여유로워졌으며 이전에 비해 나의 주장이 더 강해졌다면서 이전보다 많이 늙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어찌되었든 좋다. 남들이 보기에 이전보다 더 여유로워지고 당당해졌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내 인생은 잘 산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이젠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서 좀 더 느긋하고 안으로는 더욱 단단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예전처럼 다시 당당하고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는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칼럼니스트 호은아 씨는 <경기도재활공학서비스연구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긍정적인 마인드의 장애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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