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견디게 하는 일 '종이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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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11-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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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머리도 좋고 손재주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지나친 사랑으로 인해 사회생활은 할 수 없었고, 나 또한 휠체어를 타고 도전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겁쟁이였다.
30대 중반에 시작한 늦은 결혼생활은 힘들어 우울해지기 일쑤였으며, 40대에 접어들면서 몸은 자꾸 아프기만 했다.
어느 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를 통해 부산에서 '전국장애인 기능경기대회' 생활·레저 부문에 '종이접기' 종목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대로 종이접기를 배운 적이 없어 종이접기 지도서에 있는 기본 기호와 도면을 공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접어 보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청심환까지 먹고 경기에 임했다. 참가비라도 받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포기하지 않았는데 은메달을 획득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스승을 만나다
그때 만난 분이 있다. 경기대회가 치러지는 6시간 내내 뇌병변 참가자가 흘리는 침을 닦아 주기도 하고, 긴장한 참가자의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긴장을 풀어 주려고 애쓰는 분이 있었다. 메달을 수여할 때마다 꽃다발을 안겨 주시고 일일이 사진까지 찍어 준 그분은 (사)한국종이접기협회의 승효정 선생님이었고, 4명의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뇌병변 6급 장애아들이 있다면서 아직까지 장애인 전문 강사가 없으니 관심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참으로 친절하고 예쁜 분이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의 만남이었다. 대구에 살고 계신 선생님은 서울로 협회의 일을 보러 오실 때마다 먼 거리와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개인적으로 지도해 주셨다. 그 결과 종이접기초급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 자격증을 준비하던 중 갑작스럽게 간암으로 남편을 잃게 되면서 정신줄을 놓아 버리고 싶을 정도의 엄청난 충격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3개월 동안 남편을 함께 간병하신 친정엄마가 폐와 갑상선의 암으로 2차례의 수술과 4차례의 항암치료를 받는 병원 생활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강사로 나서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다시 종이접기에 집중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종이접기사범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리고 종이접기 강사로 초청을 받았다. 강남구직업생활센터의 지적장애인과 밀알복지재단의 교회의 어르신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처음 종이접기 수업을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교회 어르신들은 전동휠체어에 놀라고 실망도 하는 듯했다. 그래도 힘을 내어 나를 소개하고 종이접기를 시작하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선생님! 이런 종이접기는 처음이에요!"
그런데 일주일 후, 여러 어르신들이 불참하였다. 아니다. 종이접기 수업에 다시 오시지 않았다. 실망? 아니 실망은 하지 않았다. 열렬한 할머니 팬들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지적장애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나는 더욱 행복해졌다. 그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말도 없이 웃음으로 반가움을 나타내기도 하고, 껴안아 주기도 하고, 계속 따라 다니면서 "히야신스 접어요! 김선희 선생님 보고 싶어서 기다렸어요!" 하면서 졸졸 따라 다니기도 한다. 아직은 서툴고 힘들게 종이접기를 하는 그들이지만 종이접기 시간을 기다리고, 종이접기를 사랑하는 그들이 있어서 늘 행복하다.
용기가 필요해
많은 이들이 갑작스레 겪은 남편과 친정어머니의 일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지 궁금해 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종이접기를 하면서 잘 이겨내고 있어요!"라고….
모든 사람에게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반드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은 일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같다. 이 사회에서 오랫동안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장애여성들에겐 그래서 더욱 일이 필요한 듯하다. 따라서 때론 현실이 발목을 잡고, 주저앉아 있게 할지라도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새로운 도전에 마냥 소극적이면서 돈이 될지 안 될지 생각만 하다가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기회를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선희 씨는 (사)한국종이접기협회 종이접기 초급강사이자 종이접기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쾌하고 시원시원한 장애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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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선희 (dwnetwo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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