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시험편의, 그 권리를 위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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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11-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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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러한 논란을 최소화하며, 장애에 따른 사회적 지원이 시험과 같은 여러 가지 평가영역에서도 안정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활용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책임 또한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아쉽게도, (소수이기는 하나) 어떤 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장애유형, 정도와 전혀 맞지 않는 시험편의를 그대로 제공받고 있다. 나는 후배들 몇몇에게서, 수능시험장에서 자신의 장애상 전혀 시간을 더 배분받아야할 이유가 없는 경우에도 시간을 더 주는 시험장에 배정을 받거나, 또는 감독교사들이 과도한 ‘오지랖’ 으로 은근슬쩍 시간을 더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얼마 전 한 시험장에서, 상지기능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척수장애인 몇몇이 1.5배의 시간을 배분하는 강의실에서 중증의 장애인들과 함께 시험을 보는 것을 목격한 일도 있었다.
경쟁사회 자체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어찌되었든 각자의 노력이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것은 대단히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어떤 장애인들은 의학적으로, 그리고 주관적으로 판단한 장애유형에 걸맞게 시험편의를 선택하는 반면에, 다른 몇몇은 그것을 악용해서 시험을 본다는 것은 마치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다름’을 고려하지 않고 ‘공정한 경쟁’만을 부르짖던 과거의 그 무식한 경쟁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같다. 점점 모든 시험들이 ‘시간싸움’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1.2배에서 1.5배를 아무런 합당한 이유 없이 더 배정받는 다는 것은 룰을 정확히 지키는 타인에게는 굉장히 불합리한 일이 된다.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의 악용이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시험편의를 제공하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이를 이슈화시키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몇몇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유형이나 상태에 맞지 않게 부당한 시험편의를 악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아니 그럼 지금까지 장애인들은 시간을 1.5배나 더 받았다는 것이냐. 그게 무슨 인간승리냐”라며 당장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은 난리가 날 것이다.
또한 장애유형에 따라 시험시간이나 편의시설을 배분해도 장애란 그렇게 어거지로 유형화할 수 있는 게 애초부터 아니므로, 다들 개인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상지기능에 거의 장애가 없을 수 있고, 척수장애라 해도 상지기능에 무리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걸 시험 때마다 의사들이 측정하고 판단해서 시험편의를 제공하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할뿐더러 우리의 몸 자체를 그렇게 ‘전문가’들의 분류법에 맞추게 한다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결국 최소한의 기준만 제도적으로 확립하되, 장애인당사자 각자가 자신의 몸에 맞는 적절하고 공정한 시험편의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들에게 적절한 시험편의를 제공하는 것의 정당함과 합리성에 대한 인식을 헤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애인당사자들 간의 정당하고 공정한 시험편의 배분을 이루어내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안타깝게도 각자의 ‘양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
수험생입장에서는 1점이라도 더 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우리는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쟁취해온 만큼 각자의 장애유형에 적합한 정도의 편의만을 당당하게, 그러나 정직하게 누려야 한다.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가 1.2배의 시간을 받고, 중증의 뇌병변 장애인과 똑같은 편의를 제공받는 것은 명백히 부당하고 비윤리적인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들이 교육에 접근하게 되고, 좋든 싫든 이러한 평가시스템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문제에 대한 솔직한 성찰이 필요하다. 얼마 뒤 있을 수능시험과, 그 외의 많은 시험들에서 더 많은 장애인들이 합당한 시험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위해서, 이제 부당한 방법으로 편의제공을 악용하는 일은 소수라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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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원영 (g-restorati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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