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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내가 괴롭혔던 장애인 친구와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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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558회 작성일 09-08-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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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오게되면서 전학을 오게 되었다. 내가 전학을 온 학교 주변이 한창 신도시 개발이 되고 있어서 여기저기에 아파트가 쪼삣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고 그로 인해 전학생은 나 뿐만 아니라 줄줄이 소세지처럼 하루를 멀다하고 이어져 덕분에 전학생으로서의 생소함이나 이질감은 급격이 줄어들었다.

매일 같이 들어오는 전학생들로 학교는 옥상에 컨테이너 건물까지 만들어야 했고 15반까지 있는 한 학년임에도 한 학급엔 60명이 넘는 아이들로 마치 콩나물 시루를 연상케하기도 하였다. 그 콩나물들 사이에 유독 튀었던 친구. 그가 바로 '이민성'(가명)이었다.

민성이는 한 눈에 보아도 우리 또래들보다 몸집도 생김도 모두 성숙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고 일반 아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도 알 아 볼 수 있었다. 민성이는 다름 아닌 장애인이었다. 어릴 때 뇌수종을 앓았고 뇌수술로 인해 또래 아이들보다 모든 방면에서 늦을 수 밖에 없었다.

까불기도 엄청 까불었고 별난 아이였던 나는 이런 민성이를 참 못살게 군 적이 많았다. 민성이의 행동이나 어투를 따라하면서 놀리기도 했고 괜시리 옆에서 치근덕거리고 도망가기도 했다. 그럴때면 민성이는 큰 덩치로 화를 내며 내게 달려오곤 했지만 다른 것도 늦듯 그 속도도 느려 날 잡지 못함에 매우 분해하곤 했다. 그렇게 분해하는 민성이의 모습을 보면서 난 더 약을 올리다가 선생님께 꾸중을 듣는 일도 비일비재였다.

민성이는 이모집에 살면서 이모가 보살피고 계셨다. 민성이 이모는 그런 내 얘길 들으셨는지 집으로 초대를 하셔 맛있는 음식도 해주시고 다독거리시며 민성이와 사이좋게 지내길 부탁하셨다. 난 그 후로 민성이를 심하게 괴롭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종종 울리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는 건 여전한 말썽꾸러기였던 것이다.

그땐 왜 그렇게도 철이 없었는지 어쩌면 내가 민성이 보다도 더 많은 것이 느린 그런 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아이들은 민성이의 그런 사정을 알고 더 도와주고 많은 배려를 했음에도 왜 나만 유독 민성이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비 장애인들과 같은 학교를 졸업시키기 위한 민성이 이모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나같은 아이들로 인해 겪었을 그 아픔들이 얼마나 잦았을까. 그럼에도 민성이 이모는 날 불러 더 다독거리시고 잘해주시고 쓰다듬어 주셨다. 그런 훌륭한 이모님이 계셨기 때문일까? 인터넷을 발달로 동창도 찾게 된 오늘날 예상치 못한 민성이의 연락으로 안부를 알게 되었고 민성이는 지금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자기 공부에도 매진하고 영상과 미디어 쪽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반듯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민성아, 내가 그때 널 왜 그렇게 괴롭혔었는지 모르겠어.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야."

"그래. 네가 날 제일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아. 그땐 어렸으니까 그럴수도 있지."

민성이는 자신을 제일 많이 괴롭혔던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날 다시 찾아주는 감사스러운 선물을 주었다. 덕분에 그 녀석의 성장한 모습과 훌륭한 이모님의 안부까지 덤으로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던 내가 지금은 장애인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하고 장애인의 편의와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개과천선'이라는 성어는 이런 나에게 쓰라고 만들어진 성어가 아닐까라는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어릴 때 가까이에 있었던 민성이에게 따뜻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젖어들기도 한다.

민성이는 지금 경기도에 살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산다면 녀석이 좋아하는 주전부리 거리를 사들고 자주 찾아가 만나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내게 그런 기회는 초등학교 때 뿐이었나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봉사와 베품에도 때가 있는 것이다. 민성이 같은 장애인들이 가까이 있을 때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고 기회가 된 것이다. 어딘가에서라도 장애인을 마주쳤을 때가 바로 그때가 아닌가 싶다. 자하철에서, 길거리에서, 공연장에서 등등 우리에게 봉사와 베품을 행할 수 있는 때는 의외로 자주 찾아오곤 한다. 그런 '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다.


기고/장기웅 (brainstorm81@paran.com),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