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겐 어려운 투표…"도장찍는 칸 작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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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위해 제작된 점자형 투표보조용구 |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A씨는 아들 B씨와 함께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한 투표소를 찾았다. 그는 발달장애 1급인 아들의 기표를 도와주려고 기표소까지 함께 들어가려다가 선거사무원의 제지를 받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사무원은 한씨를 가로막고 "기표소 안내까지만 할 수 있다. 같이 들어가시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A씨 모자(母子)가 찾은 투표소는 대기하는 인원이 거의 없었지만, 발달장애인인 그가 발열 체크를 하고 투표를 완료하기까지는 10여분이 걸렸다. 어머니 A씨는 "아들은 도장을 어디에다가 찍어야 하는지 사전 교육이 안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비장애인에게 기표는 1분도 걸리지 않는 단순한 행위지만, 발달장애인인 A씨는 신경 쓸 게 많다고 한다. A씨는 "(도장 찍는) 칸이 작아서 제대로 찍을 수 있을지 걱정됐다"며 "번호와 이름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막상 찍는 그 작업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투표일을 얼마 안 남기고 사퇴한 후보가 있다면 비장애인은 인지하지만 발달장애인은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발달장애인에 한해서 사퇴 후보 칸에는 선을 긋는다든지 등 간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2020년 21대 총선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는 장애 유형에 지적·자폐성 장애를 제외했다.
선관위는 '신체장애로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지적·자폐성 장애인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기존 투표관리매뉴얼이 '모든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매뉴얼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발한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법원에는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누구에게 투표할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글씨를 모르거나 투표과정을 수행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들이 투표보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인권위는 작년 3월 선관위에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편의를 제공하라고 권고했으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송경근 수석부장판사)는 지난달 20대 대선 투표관리매뉴얼 문구를 개정할 때 발달장애인 권익 옹호단체와 신의성실에 따라 협의하라는 강제조정을 결정했다. 채권자와 채무자(대한민국)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이 강제조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됐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는 "20대 대선 투표 시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 지원을 권리로 인정했다"며 법원 결정을 환영했지만, 이날 현장에선 여전히 발달장애인이 투표 보조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한씨가 투표한 투표소 관계자는 "선관위 교육을 받았을 때 시각·신체 장애인만 투표보조를 할 수 있고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고 했다.
장추련 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법원 강제조정에 의해 급박하게 결정되긴 했지만 (선관위가) 미리 준비를 해야 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올해부터 보조가 가능하다며 투표하러 가신 발달장애인 분들이 (투표소에) 갔다가 언성을 높이고 시선이 주목되는 걸 불편해해서 결국 투표를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박찬균 allopen@bok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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