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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부모들 무릎 꿇게 한 주민들이 '잊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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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혜진 조회 1,617회 작성일 17-09-1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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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은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이다. 그녀의 둘째 아이와 나의 첫째 아이는 한 달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아이를 키우느라 자주 볼 수 없었지만, 큰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M은 아이 용품 구매서부터 감기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상담을 해주는 나의 육아멘토였다. 15개월 차이로 둘째를 가진 M은 연년생과 비슷한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며 힘든 가운데도 초보 엄마인 나를 잘 다독여줬다.


M의 첫째 아이는 예민해서 갓난아기 때 엄마를 힘들게 했다. 바닥에 내려놓기만 해도 울었고, 친구는 방광염에 걸릴만큼 힘들었다. 예민했지만 그녀의 큰 딸은 똘똘했다. 8개월에 말을 하기 시작했고, 5세에 집에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을 여러 번 읽더니 혼자 한글을 깨쳤다.

둘째 아이는 큰 아이와 정반대였다. 젖 먹으면 자고 순해서 낯도 안 가리고 그녀를 편하게 해 주는 아들이었다. 누나와 달리 말이 조금 느렸는데, 24개월 영유아 검진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36개월이 넘어서는데 문장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자 M은 복직하기 전에 언어치료 센터를 찾았다. 의사는 큰 아이가 있고 둘째가 순한 경우 엄마의 관심이 덜 가게 돼 이런 경우가 있다고 했다. 치료를 하면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한 달 뒤 M은 복직했다.

 

M의 직장이 경기도에 있었던 탓에 평일엔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보고, 주말이면 집으로 왔다. M이 복직한 지 3개월 정도 됐을 때 둘째 아이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됐다. 처음엔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뀌고 엄마와 떨어져서 적응하기 힘든 심리적인 이유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여러 센터를 다녀 진단 받은 결과 발달장애였다. 

 

결국 M은 직장을 그만뒀고 아이 치료를 위해 언어치료, 놀이치료 등 일주일에 3가지 이상의 센터를 다녔다. 숲이 가까운 경기도 지역으로 이사도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M은 주변에 발달장애아 통합 교육을 하는 곳을 찾았다. 겨우 한 군데를 찾아 대기를 걸었다. 아이를 받아 준다는 사실만으로 다른 엄마들이 유치원을 선택할 때 살펴보는 까다로운 기준들을 모두 무시했다. 


낯선 공간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이 많이 완화됐을 쯤 M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왔다. M의 둘째 아이는 기차와 자동차를 좋아했다. 우리 아들과 함께 기찻길을 만들고 기차를 움직이며 다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놀았다. M이 돌아간 뒤 책장에서 <수잔이 웃어요>를 꺼냈다.

 

<수잔이 웃어요>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주는 그림책이다. 책표지를 양쪽으로 펼치면 앞면과 뒷면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지는데, 시소를 타고 있는 수잔과 수잔의 아빠가 그려져 있다. 앞 표지 쪽에는 수잔이 시소에 앉아 하늘 위로 올라가 웃고 있다. 

 

책 제목과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이 책에는 수잔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 생활 모습이 나온다. 시간 순서와 인과를 가진 스토리로 구성된 이야기가 아닌 단편적인 상황 속에서 수잔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이가 그린 듯한 자유로운 선과 형태에 색연필의 부드러운 색감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그림책이다.

 

책장을 넘기면 웃고 노래하고 할머니를 놀래켜 주기도 하며 아빠 목말타는 걸 좋아하는 수잔이 나온다. 수잔은 커튼 뒤에 숨어 수줍어하다 갑자기 소리를 치기도 하는 장난꾸러기 소녀다. 목욕할 때는 엄마 옷에 물이 다 튀도록 물장구를 치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뱅뱅이를 타며 즐거워한다. 


수학 문제를 틀려서 울기도 하지만 시험지를 접어 종이배를 만드는 유머가 있는 강한 소녀 수잔을 보고 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엄마 품에 안기고, 아빠가 이야기 책을 읽어주어야 잠자리에 드는 천진난만한 수잔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이 책을 보며 아이들은 수잔을 통해 책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좋아한다.

이렇게 수잔과 함께 웃고 장난치다 마지막 장을 펼치면 순간 멍해진다. 나와 똑같은 모습이었던 수잔이 휠체어에 앉아있다. '이게 바로 너와 나랑 똑같은 수잔의 모습이야'라는 말과 휠체어에 앉은 수잔의 그림이 대응하고 있는 이 장면에서 가슴이 멍먹해지고 뜨끈해진다.

인권 교육, 장애 교육에서 들었던, '장애인은 나와 조금 다를 뿐'이라는 피상적인 이야기보다 이 그림 한 장이 전하는 메시지가 훨씬 강력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강서구 가양동의 공진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려고 하자 인근 주민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주민들은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치부하고 '집값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국립한방의료원 유치를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이 국립한방의료원을 요구하는 근거는 자유 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지난 선거에서 국립한방의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해당 부지는 서울시교육청 소유로 현행법상 학교부지는 학교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원을 건립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주민들의 반대로 파행된 주민 토론회에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법적으로 불가능한 의료원을 건립하겠다는 건 김성태 의원이 만든 가공의 희망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장애인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는 영상이 SNS를 통해 퍼지고, 현재 '강서구를 사랑하는 시민 모임'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특수학교 논란을 보며 우리 사회 구별 논리가 뿌리깊음을 느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겼다. 형제 자매도 다르게 생겼고,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도 다르게 생겼다. 이 다른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수잔은 우리와 다르게 휠체어를 통해 이동하지만 우리처럼 웃고 울고 똑같다.

수잔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녀를 차별하고 배제한다면, 우리 또한 다른 이들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된다. 유색인종은 백인종에게 차별받고, 가난한 사람은 돈 있는 사람에게 차별받게 된다.

또,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으며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게 된다. 특수학교를 '혐오시설'로 분류하는 주민들도 노화가 진행되면 이러한 장애를 겪게 된다.

그때 주민들은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될까? 자신들이 사는 집이 타인에게 '혐오시설'이 되며 집값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된다는 걸 받아들일까? 노화에 의한 장애가 아니어도 장애의 90%는 후천적 장애다.

우리 모두가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장애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다. 장애인을 우리로부터 구별하는 건 우리가 우리를 배제하는 모순이다.

'이게 바로 너와 나랑 똑같은 수잔의 모습이야.'

이 마지막 구절의 울림이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주민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