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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장애아에게 축구장 선물…이것이 진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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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816회 작성일 09-07-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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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이라는 한국 축구의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던 거스 히딩크(63) 감독. 그가 오면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축구 팬들은 물론 국민 대부분이 환영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출하고 떠난 지 7년이 흘렀건만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아직도 영웅이다. 왜 그럴까.

2002년 월드컵에 대한 회상, 맡는 팀마다 세계 정상급으로 만들어 놓는 그의 지도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정치·경제적으로 힘들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를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에서는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말해 한국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또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는 “내가 조국 네덜란드를 이겨 반역자가 된다면 난 기꺼이 반역자가 될 것이다”고 말해 러시아를 흥분시켰다.

히딩크 감독은 말뿐만 아니라 적절한 제스처로 팬들을 열광시킨다.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비롯해 껑충껑충 뛰며 어린애같이 좋아하는 모습에 팬들도 덩달아 즐겁다. 선수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소통능력도 뛰어나다. 히딩크 감독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기억력’은 아직도 탁월했다. 지난 6월28일 입국한 그에게 ‘사랑·희망전령사’릴레이 인터뷰를 부탁했더니 “예전에 ‘유일 석간(only evening news paper)’임을 내세워 감독 인터뷰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기자 아니냐”며 8년 전 월드컵 준비 기간에 있었던 일을 뚜렷이 기억했다.

그는 또 진정한 ‘프로’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이번 한국 방문 목적이 ‘재단의 일’과 ‘행사’때문이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뿐더러, 나를 통해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면 행사에 함께 참가하면 해결될 것이다”고 웃었다. ‘일정이 하루 빈다’는 질문에 그는 “하루 정도는 한국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의 행사를 충실히 전달하는 조건(?)으로 틈틈이 얘기를 나눴다.

그의 스케줄은 정말 바빴다. 그는 6월28일 입국한 이후 7월6일 출국할 때까지 울산~서울~인천~수원~전주~서울~용인을 돌며 행사에 참석했다. 29일 아침 울산으로 내려가 울산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후에는 축구클리닉과 팬사인회를 치른 뒤 비행기편으로 서울로 올라와 대한축구협회 초청 만찬에 참석하는 식이었다. 30일에는 인천에서 ‘히딩크 축구센터’ 기공식에 참석하고, 1일에는 수원의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히딩크 드림필드 3호’ 개장식, 2일에는 전주에서 ‘ 히딩크 드림필드 4호’ 개장식, 4일에는 용인축구센터에서 축구 클리닉 행사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 냈다.

그는 먼저 잦은(?) 한국 방문에 대해 “축구로 인연을 맺은 한국민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나에게 끝없는 사랑과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 히딩크재단을 만들었고, 매년 한국에 돌아 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 인생 끝까지 한국과 함께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매년 한국에 돌아오고, 한국민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재단을 만들고, 그 가운데서도 시각 장애인용 축구장 건립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의 조언덕분이라고 털어 놓았다.

히딩크는 “2002년 당시 나는 한국 대표팀에 집중하고, 내 할 일만 했다”면서 “ 어느날 아침, 침대위에서 엘리자베스가 ‘한국을 위해 뭔가 뜻 깊은 일을 하자. 사회에는 축구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면서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도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전용구장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준비했고, 2007년 충주 성심맹아원에 1호 경기장을 만들었고, 지난해에 2호(경북 포항 한동대 캠퍼스내)를 개장했다. 이어 올해 3, 4호 경기장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스포츠의 열정을 느끼게 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전해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축구를 즐길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특권층이다.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정상적 사람은 ‘노멀(normal)’이 아니다. 장애인에 비해 너무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조금씩 돕고, 눈을 열어 가면 밝고 맑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조그마한 베풂은 금세 사랑과 희망의 바이러스가 돼 퍼져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에게 ‘드림필드’를 제안한 엘리자베스는 “히딩크가 구장에서 장애어린이들과 손을 잡고 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감독의 축구 열정으로 한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재단을 만들어 한국민들과 더 친해 질 수 있었다. 열정과 사랑, 그리고 나눔과 희망은 한 카테고리라는 생각이 든다”며 히딩크를 바라보며 웃었다.

히딩크 재단은 전국적으로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됐던 10개 시·도에 ‘드림필드’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에 ‘공부방 축구교실’도 운영하고, 예체능 인재도 발굴하면서 한국·네덜란드간에 교환 훈련 프로그램도 가질 예정이다. 그는 “12세 안팎의 유소년을 대상으로, 제2의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축구지도자답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프로축구단의 유소년클럽 활성화와 히딩크 재단을 통한 ‘유소년 축구센터 건립’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은 3, 4호 드림필드 개장식에 참석해 장애우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표출되는 여러분의 인내심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며 “매년 한국을 두 번씩 찾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자주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박지성과 이영표를 예로 들며 장애인들과 어린이들에게 꿈을 잃지 말고 끝까지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2002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내 제자 중 두 명이 최고의 축구선수로 거듭났다”며 “드림필드에서 뛰놀게 될 아이들과 장애인들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당신은 항상 희망을 주고, 때로는 ‘마법’을 부린다고들 한다’는 얘기에 그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져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평생을 축구경기를 하고 선수들을 가르쳐 왔기에 나름대로 노하우는 갖고 있다. 그러나 실상 마법이란 건 없다. 성공의 관건은 실력과 열정 및 책임감을 가진 제대로 된 선수들을 찾아 그들이 한 팀을 이뤄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이다. 선수들이 실력, 열정, 책임감, 직업윤리, 희생정신 등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협력을 도모하면 된다. 그런 후 선수들을 믿고 그들이 마법을 펼치도록 하면 된다”며 다시 한번 더 “마법은 없다”고 강조하며 웃었다.

그는 장애우와 어린이들에게 ‘본 받을 만한 성공의 아름다운 모델’로 제시했던 박지성에 대해 “야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타의식뿐만 아니라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로서 최고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평했다. 히딩크는 박지성에게 ‘특별 휴가’를 줬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박지성이 네덜란드 진출 초기에 언론의 비판 때문에 힘들어 했었다. 그래서 내가 14일간 휴가를 주면서 그 이후에 거취를 결정하자고 했다. 박지성은 돌아와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히딩크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남북이 동반 진출한 것에 큰 의미를 뒀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북한과 경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한국인은 아니지만 큰 감명을 받았다. 이번 동반 진출이 ‘남북 화해’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히딩크 감독은 7년 전 추억 속의 영웅만이 아니다. 한국축구에,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희망 전령사’인 것이다.

kj59@munhwa.com, ‘월드컵 4강’이라는 한국 축구의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던 거스 히딩크(63) 감독. 그가 오면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축구 팬들은 물론 국민 대부분이 환영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출하고 떠난 지 7년이 흘렀건만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아직도 영웅이다. 왜 그럴까.

2002년 월드컵에 대한 회상, 맡는 팀마다 세계 정상급으로 만들어 놓는 그의 지도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정치·경제적으로 힘들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를 통해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에서는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말해 한국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또 러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서는 “내가 조국 네덜란드를 이겨 반역자가 된다면 난 기꺼이 반역자가 될 것이다”고 말해 러시아를 흥분시켰다.

히딩크 감독은 말뿐만 아니라 적절한 제스처로 팬들을 열광시킨다.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비롯해 껑충껑충 뛰며 어린애같이 좋아하는 모습에 팬들도 덩달아 즐겁다. 선수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소통능력도 뛰어나다. 히딩크 감독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기억력’은 아직도 탁월했다. 지난 6월28일 입국한 그에게 ‘사랑·희망전령사’릴레이 인터뷰를 부탁했더니 “예전에 ‘유일 석간(only evening news paper)’임을 내세워 감독 인터뷰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기자 아니냐”며 8년 전 월드컵 준비 기간에 있었던 일을 뚜렷이 기억했다.

그는 또 진정한 ‘프로’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이번 한국 방문 목적이 ‘재단의 일’과 ‘행사’때문이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을 뿐더러, 나를 통해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면 행사에 함께 참가하면 해결될 것이다”고 웃었다. ‘일정이 하루 빈다’는 질문에 그는 “하루 정도는 한국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의 행사를 충실히 전달하는 조건(?)으로 틈틈이 얘기를 나눴다.

그의 스케줄은 정말 바빴다. 그는 6월28일 입국한 이후 7월6일 출국할 때까지 울산~서울~인천~수원~전주~서울~용인을 돌며 행사에 참석했다. 29일 아침 울산으로 내려가 울산대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오후에는 축구클리닉과 팬사인회를 치른 뒤 비행기편으로 서울로 올라와 대한축구협회 초청 만찬에 참석하는 식이었다. 30일에는 인천에서 ‘히딩크 축구센터’ 기공식에 참석하고, 1일에는 수원의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히딩크 드림필드 3호’ 개장식, 2일에는 전주에서 ‘ 히딩크 드림필드 4호’ 개장식, 4일에는 용인축구센터에서 축구 클리닉 행사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 냈다.

그는 먼저 잦은(?) 한국 방문에 대해 “축구로 인연을 맺은 한국민으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나에게 끝없는 사랑과 애정에 보답하기 위해 히딩크재단을 만들었고, 매년 한국에 돌아 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 인생 끝까지 한국과 함께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매년 한국에 돌아오고, 한국민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재단을 만들고, 그 가운데서도 시각 장애인용 축구장 건립을 하게 된 것은 그의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의 조언덕분이라고 털어 놓았다.

히딩크는 “2002년 당시 나는 한국 대표팀에 집중하고, 내 할 일만 했다”면서 “ 어느날 아침, 침대위에서 엘리자베스가 ‘한국을 위해 뭔가 뜻 깊은 일을 하자. 사회에는 축구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면서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도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전용구장을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준비했고, 2007년 충주 성심맹아원에 1호 경기장을 만들었고, 지난해에 2호(경북 포항 한동대 캠퍼스내)를 개장했다. 이어 올해 3, 4호 경기장을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스포츠의 열정을 느끼게 하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전해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축구를 즐길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특권층이다.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정상적 사람은 ‘노멀(normal)’이 아니다. 장애인에 비해 너무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조금씩 돕고, 눈을 열어 가면 밝고 맑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조그마한 베풂은 금세 사랑과 희망의 바이러스가 돼 퍼져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에게 ‘드림필드’를 제안한 엘리자베스는 “히딩크가 구장에서 장애어린이들과 손을 잡고 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감독의 축구 열정으로 한국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재단을 만들어 한국민들과 더 친해 질 수 있었다. 열정과 사랑, 그리고 나눔과 희망은 한 카테고리라는 생각이 든다”며 히딩크를 바라보며 웃었다.

히딩크 재단은 전국적으로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됐던 10개 시·도에 ‘드림필드’를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에 ‘공부방 축구교실’도 운영하고, 예체능 인재도 발굴하면서 한국·네덜란드간에 교환 훈련 프로그램도 가질 예정이다. 그는 “12세 안팎의 유소년을 대상으로, 제2의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축구지도자답게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프로축구단의 유소년클럽 활성화와 히딩크 재단을 통한 ‘유소년 축구센터 건립’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히딩크 감독은 3, 4호 드림필드 개장식에 참석해 장애우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표출되는 여러분의 인내심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며 “매년 한국을 두 번씩 찾고 있는데, 앞으로는 더 자주 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그는 박지성과 이영표를 예로 들며 장애인들과 어린이들에게 꿈을 잃지 말고 끝까지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2002월드컵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내 제자 중 두 명이 최고의 축구선수로 거듭났다”며 “드림필드에서 뛰놀게 될 아이들과 장애인들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당신은 항상 희망을 주고, 때로는 ‘마법’을 부린다고들 한다’는 얘기에 그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져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평생을 축구경기를 하고 선수들을 가르쳐 왔기에 나름대로 노하우는 갖고 있다. 그러나 실상 마법이란 건 없다. 성공의 관건은 실력과 열정 및 책임감을 가진 제대로 된 선수들을 찾아 그들이 한 팀을 이뤄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이다. 선수들이 실력, 열정, 책임감, 직업윤리, 희생정신 등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협력을 도모하면 된다. 그런 후 선수들을 믿고 그들이 마법을 펼치도록 하면 된다”며 다시 한번 더 “마법은 없다”고 강조하며 웃었다.

그는 장애우와 어린이들에게 ‘본 받을 만한 성공의 아름다운 모델’로 제시했던 박지성에 대해 “야망을 품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타의식뿐만 아니라 노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로서 최고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평했다. 히딩크는 박지성에게 ‘특별 휴가’를 줬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박지성이 네덜란드 진출 초기에 언론의 비판 때문에 힘들어 했었다. 그래서 내가 14일간 휴가를 주면서 그 이후에 거취를 결정하자고 했다. 박지성은 돌아와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 결과 성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히딩크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남북이 동반 진출한 것에 큰 의미를 뒀다. 그는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북한과 경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한국인은 아니지만 큰 감명을 받았다. 이번 동반 진출이 ‘남북 화해’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히딩크 감독은 7년 전 추억 속의 영웅만이 아니다. 한국축구에,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그리고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희망 전령사’인 것이다.

kj59@munhwa.com,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