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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속 복지관

현금지급으로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장애인이 직접 선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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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민1 조회 1,113회 작성일 13-06-2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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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현금지급으로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장애인이 직접 선택한다면?!’이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장애인재단이 영국의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도의 내용을 소개한 책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의 번역 출판을 기념해 마련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장애인재단 이채필 이사장(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인사말을 통해 “장애인복지법이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자기결정권을 선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장애인 서비스 공급체제를 통해 주어지는 서비스는 전문가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장애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 선진국은 개인예산제를 통한 개인 맞춤형 개별화 복지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즉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인정이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장애인을 서비스의 대상화가 아니라 서비스의 주체자로 변신시키는 제도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부터 박근혜 정부가 개별급여제를 실시한다고 하고, 장애인의 등급제는 임기 내에 폐지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장애등급제 폐지 후 이를 대체할 복지시스템으로 개인예산제도가 제시되고 있다. 개인예산제도의 국내 도입에 있어서 많은 기대가 있는 반면 여러 문제점을 동반할 수 있겠고, 국민적 공감대 역시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개인예산제 도입은 과연 실현 가능할지, 새로운 서비스 제도 구축이 장애인의 완전한 권리실현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발판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
장애인 당사자와 시민단체의 힘으로 구축된 장애인 중심의 제도

이날 세미나는 가톨릭대학교 특수교육학과 박희찬 교수가 좌장을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가 발제를 맡았으며,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를 비롯해 이상호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개발연구부 서해정 선임연구원, 노틀담복지관 이은기 사무국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먼저, 토론자들의 발표에 앞서 출간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의 원서를 번역한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용득 교수가 발제를 맡아 개인예산제의 정의 및 의의를 설명하고 영국 개인예산제도의 정립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교수가 설명한 개인예산제도의 정립과정을 살펴보면, 영국은 1993년 서비스 이용자 선택제도, 즉 일종의 우리나라의 바우처 같은 방식을 도입했지만 현실에서 장애인 선택권에 있어서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고, 이에 장애계가 현금을 직접 지급할 것을 정부에 요청,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이후 96년에 현금지급제도 관련 법을 제정했으며, 97년에 시행하게 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현금지급제를 시행했을 당시 영국정부는 영국 전역에 있어서 이 제도로 바뀔 거라고 예측했다. 그런데 10~15%만 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15%이상 서비스 이용 수치가 올라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이용인들이 기관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 사용내역을 증빙해야 하는 것 등이 수고스럽고 번거로운 것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활동보조인 같은 인력을 고용했을 때 노사관계가 되어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현금지급제도가 발달장애인은 이용하기 어려워 발달장애인을 배제시킨 제도라는 비판까지 일었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속출하자 영국의 장애계는 98년에 새로운 시스템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개인예산제도다. ‘현금지급제(Direct payment)’는 서비스 이용자에게 사용 용도를 확정하지 않고 구매권을 주는 것을 말한다면, 이 제도에 한발 더 나아가 개인에게 주어지는 서비스의 총양을 환산해 지급하는 것을 ‘개인예산제(Personal Budget)’라고 하며, 이는 등급에 따른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므로 개별급여제(Individual Budget)라고도 할 수 있다. 즉 현금지급제도는 현금을 받아서 아주 구체적으로 용처가 지정된 범위 안에서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이며, 개인예산제도는 현금지급제보다 더 유연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공통적으로 두 제도 모두 시설 거주를 희망하는 자는 이용할 수 없으며, 지역 사회 내에 거주하는 희망자에 한 한다.

개인예산제도는 인컨트롤(in-control)이라는 민간단체가 개발하였고, 시범사업을 벌이고 모델검증도 하면서 정부에 사업을 제시하게 됐고, 영국정부는 2003년 이 제도를 받아들여 시행하게 되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었다.

김 교수는 영국에서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도를 모두 이용해 본 장애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바우처와 같은 형태의 현물로서 서비스를 받는 행위를 아이의 단계, 현금지급제에 대해서 청소년 단계로, 개인예산제는 성인으로 3단계라 볼 수 있다”면서 “개인예산제도는 현금지급제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초수급비, 장애수당 등의 사회보장급여제도는 현금지급제나 개인예산제도에 통합되지 않고 별도로 지급되고 있으며, 두 제도 모두 매월과 연말이 되면 지불정산의 의무가 있다. 또 바우처 같은 제도는 지정된 기관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개인예산제는 서비스 이용자가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로 인해 활동보조서비스 같은 전문 인력을 연계해주는 중개기관은 현재 영국에서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개인예산제 도입 ‘득인가, 독이 될 것인가’

한국의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에 앞서서 서비스 지급모델로 현금지급제 또는 개인예산제도를 표방하고 있다. 기존의 서비스 지급방식은 수요자 중심이 아닌, 공급자 즉 정부나 전문가에 의해 판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토론자들 역시 이런 전통적인 구조에 반대하며 개인예산제 도입에 찬성에 표를 던졌다. 또한, 근본적인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료적 개념에 준하고 있는 현 우리나라의 장애개념을 영국과 같이 사회모델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정책개발연구부 서해정 선임연구원은 개인예산제도의 목적은 “자립생활”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제도를 통해 기대한 것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이자 진정한 자유, 당사자의 서비스 통제권 확보일 것”이라며, “이 제도가 장애인 당사자에 의해 개발됐다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먼저는 장애인과 시민단체에 의해서, 이후 정부에 의해서 출발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수 있겠다. 정부 주도적이고 비효율적인 현 우리나라의 제도에 있어서 개인예산제도는 사회서비스와 사회돌봄서비스를 변화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개인예산제 도입에 있어서 다양한 과제와 방향을 제시했다.

이상호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장애운동의 입장으로 봤을 때 개인예산제 도입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실효성 있는 과정을 겪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 의원은 “복지관 등의 에이전시와 당사자 그룹이 이 의제에 어떤 식으로 협력해 나갈까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에 앞서 공론화된 의제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장애계 내에서도 동의 및 결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틀담복지관 이은기 사무국장은 개인예산제도 시행을 위한 필수 과제로 ▲재정지원방식-표준화, 단가 획일화 ▲장애유형간의 이해관계가 형평성 제고 ▲장애인구의 욕구수요 반영하는 재원이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으며, “개인예산제도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구조개혁까지 포함된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신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승기 교수는 개인예산제도의 도입 및 추진을 급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초창기에 빈곤한 사람들을 시설에 수용했고, 이후 기초생활수급비 등의 현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변모되었다. 이것은 굉장한 변혁이었던 것”이라며, “이것을 시행했을 때 이들이 알콜중독, 도박 등 쓸데없는데 재정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현금지급이 타당하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초생활 대상자, 최저 생계비 이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현금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받아들이는 제도가 되었다”면서 “이처럼 도입 과정에서 문제도 발생할 수 있지만 그런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해결해야만 한다. 체계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우리의 과제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개인예산제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장 발전된 제도라고 할 수 있다”며, “전통적인 기관에서 줄 수 있는 서비스는 한정되어 있는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한정된 서비스에서 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런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금지급방식이 맞기 때문에 개인예산제도를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의 의견과는 달리 개인예산제도가 아직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기 때문에 예고되는 문제는 미리 파악해야 하는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용득 교수는 “혼란이 있어도 내일부터 하자고 할 만큼 이용자가 선택한다는 점이 최고의 가치라고 보면 효과성이 높은 좋은 제도이지만, 현 우리나라 복지시스템과 개인예산제도의 간극이 크다. 또 막상 시행했을 때 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입증하지 못한다면 대중적으로도 호응을 얻기도 힘들 것”이라면서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좋은 제도다 보니 자칫 잘못 받아들이면 좋은 것만 보는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바꾸는 숙제가 너무 과도할 때는 시스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려스럽다. 근본적으로 체질개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김 교수는 “자립생활센터, 장애인단체 등이 대통합적으로 모니터링 연구와 대안을 내놓으면 좋겠다. 공공전달체계는 이 제도가 되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복지관협회 등도 실천의 목록 중에서 탈시설 등과 같이 전면으로 이야기 하면서 현장의 시스템에서 바뀌어야 될 목록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풀어 가면 좋겠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갖고 있는 문제들을 공유하고 대안을 만들고 모니터링을 하면서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