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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천재-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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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025회 작성일 10-11-1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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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변화의 천재다. 수증기도 되었다가 얼음도 되고, 비도 되었다가 눈도 된다.

깊은 산속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을 볼 때마다 신비감에 사로잡힌다. 높은 절벽에서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면 그 줄기찬 힘에 압도된다. 하얀 모래 위로 물거품을 싣고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바닷가의 파도소리를 들으면, 자연의 호흡과 영원의 리듬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 단조 속에는 물리지 않는 영원한 노래가 있다.

넓은 평야를 유유히 흐르는 일대장강을 바라보면, 대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중국 황하의 누런 물이 넓은 들판을 도도히 흘러가는 것을 봤을 때, 양자강 하류에서 검푸른 물이 성난 듯 급류하는 것을 봤을 때, 대자연 앞의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력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마을 앞을 흐르는 조그만 시냇물에서 개구쟁이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던 맑은 물은 얼마나 다정다감한 추억을 안겨주는가!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조그만 자갈 위를 춤추듯 흘러가는 맑은 시냇물을 보면, 불쑥 차에서 내려 놀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옛 어른들의 시를 읽다보면 청천석 상류라는 구절이 나온다. 맑은 샘물이 돌 위를 흘러가는 것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도 없다. 요즘처럼 소음과 오염이 날로 더해가는 대도시의 혼잡함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속의 청정 벽계수는 몸과 마음의 구원이 아닐 수 없다.

호수의 맑고 고요한 물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스위스의 알프스를 찾아가는 차안에서 맑은 거울처럼 펼쳐지는 호수를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했던 적이 있다. 그 맑은 산중 호반에는 아름다운 스위스산촌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신은 전원을 만들고 악마는 도시를 만들었다고 어떤 서양의 시인은 말했다. 도시에는 부패와 타락과 허영의 악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전원에는 원시의 건강과 소박함, 그리고 인정과 생명이 있다.

산광수색이요, 산정수성이다. 수색은 물빛이고, 수성은 물소리다. 물은 빛깔도 좋고 소리도 좋다. 물빛은 깊이에 따라 달라진다. 얕은 물의 연한 수색과 깊은 연못의 시퍼런 수색은 각각 정취가 다르다.

수식보다 더 좋은 것은 수성이다. 고인 물 보다 흘러가는 물이 더 좋다. 쉴 새 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 그야말로 단조롭고 평범하긴 해도, 물리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언젠가 해인사 계곡의 한 여관에 들었을 때, 여관창밖을 바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다. 환희와 감격과 추억이 뒤얽혀 도저히 눈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물은 흘러가는 데 묘미가 있다. 완류는 완류대로 좋고. 급류는 급류대로 좋다. 산이 정의 극치라면 물은 동의 극치다. 산의 미학이 장엄한 자세로 부동한 데 있다고 한다면, 물의 미학은 걸림 없이 흘러가는 데 있다.

정과 동은 존재의 리듬이요. 만물의 상이다. 정할 때는 산처럼 정하고, 동할 때는 물처럼 동해야 한다. 정과 동의 때를 바로 알고 행동하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정중동이 있고. 동중정이 있어야 한다.

“자연은 만권의 책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고 어린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역설했다.

인간은 소리를 내고 말한다. 그러나 자연은 무언 속에서 말을 한다. 우리는 자연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자연의 언어를 이해할 줄 알아야한다. 풀은 빛으로 말하고, 번개는 소리로 말하고, 꽃은 색채로 말한다. 그렇다면 물은 어떻게 말을 할까.

물은 소리로 말하고, 빛깔로 말하고, 운동으로 말을 한다. 물은 쉴 새 없이 흐른다.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물의 속성이다. 낮은데서 높은 데로 흘러갈 수는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도 있다. 윗물이 흐릴 때 아랫물이 맑을 수 없고. 윗물이 맑을 때 아랫물이 흐릴 수 없다.

산속에서 맑은 물이 흐르듯 사회에도 청류가 흘러야한다. 사회에 탁류가 흐를 때 인간은 오염과 혼탁을 면할 수 없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물을 보고,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판 타레이, 즉 만물유전이라고 했다. 그는 물의 언어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읽은 사람이다. 물에서 변화의 철학을 깨달은 것이다.

공자도 물의 음악에 감탄한 시인이었다. 그는 냇가에서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 “아아 가는 자 이와 같도다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물의 덕을 배워 밤낮을 쉬지 않고 가는 자만이 인생의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사회에서 큰일을 이룬 사람, 정신의 위업을 성취한 사람들은 모두 물처럼 쉬지 않고 전진한 사람이다.

흘러가지 않는 물은 썩고 만다. 뛰어난 재능도 활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어 버린다. 물은 흐르는 것만이 아니다. 적응의 덕을 갖는다. 폭포에서는 빨리 쏟아지고, 평야에서는 천천히 흘러간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그릇을 채우고, 모난 그릇에 담으면 모난 그릇을 채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물이 방원의 그릇을 따라 간다고 했다.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천수만강의 도달 목표는 하나다. 쉴 때는 쉬고, 완류할 때는 완류하고, 급류할 때는 급류하면서 어김없이 제 갈 곳으로 흘러간다.

또한 물은 적응의 덕만 갖는 것이 아니다. 만물을 깨끗이 씻어 주는 정화의 덕을 갖는다. 흐르기 때문에 온갖 물건을 정결하게 씻어준다. 시냇가에 있는 바위를 보라. 쉴 새 없이 씻겨내려 깨끗하고 아름답다.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정화하는 것, 이것이 물의 덕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진리를 생명수에 비유했다. 맑은 물로 우리의 몸을 씻자. 맑은 물로 우리의 옷을 깨끗이 빨자. 맑은 물로 우리의 마음을 세탁하자.

우리의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더러운 때가 끼었는가! 거짓과 교만, 허영, 탐욕, 나태, 비굴 모두 우리의 마음에 낀 더러운 때가 아닌가.

옛날 우리의 선인들은 천지신명 앞에 정성스런 기원을 드릴 때, 옥로 수와 같은 맑은 물을 떠놓고 합장배례 했다. 티 없이 맑은 감로수와 같은 마음으로 기원을 드려야 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다.

심산유석의 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 그런 물로 우리의 몸을 씻고 사회를 씻어 청정심, 청정신, 청정토를 이루어 보자.

물은 위대한 자연의 철학자다. 모든 상황에 적응하는 지혜가 놀랍고, 여러 형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변화의 능력이 놀랍고, 일체의 오염과 혼탁을 맑게 씻어주는 정화의 덕이 놀랍다.

그래서 노자는 말하길, 상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선 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선을 상선이라고 한다. 물은 상선에 속하는 자연의 놀라운 철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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