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향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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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42회
작성일 10-10-1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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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힘찬 노크소리와 함께 말쑥하게 차려입은 노신사 한 분이 들어오셨다. 그리 크지 않은 체격에 은은한 향수 내음과 함께 들어오는 기상이 너무도 당당하여 사무실 이용자같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통상 하는 말대로 “누구세요?” 라는 나의 물음에 노인은 대답대신 재킷 속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흘러간 유행가 두 곡을 연이어 멋들어지게 불러주었다.
난 영문을 몰라 연주가 끝날 때까지 노신사와 마주서서 그 연주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노신사의 연주솜씨는 음악을 잘 모르는 나의 귀에도 보통솜씨가 아닌 듯 들렸다.
연주를 끝낸 그 노신사가 입을 열기를 “나는 걸인으로서 한 푼 도 푼, 얻어서 생활하는 사람인데 그저 얻기가 미안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구걸을 청한다.” 는 것이었다.
최근 힘들어져서 가정이 파탄된 자, 사고로 불구가 된 자, 직장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자 등등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무척 늘어난 것 같다. 일주일에 한사람 꼴은 찾아온다.
흉년에는 곳간을 열어야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나는 가능한 한 그들을 거저 돌려보내지 않는데 그 많은 걸인들 중에 오늘처럼 대가를 치르고 도움을 받겠다고 나서는 멋진 할아버지 걸인은 처음이다.
나는 노신사에게 주스 한 잔 건네면서 “할아버지, 하모니카 솜씨가 보통이 아니신데요.” 라고 하면서 “과거 악사를 하셨습니까?” 라고 질의를 하자 노인은 신이 나서 하시는 말씀이 “시끄럽지 않으시다면 다른 솜씨를 보여 줄 수도 있다.” 고 하시면서 의자에 앉아 조그마한 가죽가방에서 나팔을 꺼내 보였다.
“이것이 색소폰이라는 나팔인데 주스를 얻어 마신 감사의 표시로 한 곡 연주해 주고 싶다.” 고 하셨다.
마침 이른 아침이라 다른 사람에게 방해될 일도 없고 하여 나는 할아버지 좋으실 대로 하시라고 얘기를 했다.
할아버지가 연주해주신 곡은 배호의 마지막 잎사귀와, 내가 알지 못하는 서양 영화 음악의 주제가인 듯한 곡을 연주하셨는데 떨리는 음률, 흐느끼는 듯한 노인의 나팔소리는 잊었던 옛일이 떠오르고 멀리 있는 벗을 생각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우리는 사회문제 중에 해결 곤란한 문제의 하나로 노인문제를 들고 있다. 가족 내에서의 대화 단절, 젊은 세대와의 견해 차이, 경노효친사상의 결여 그리고 의약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날로 늘어나는 데 비해 문화와 사회적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한 것이 노인 문제의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노인들은 가정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귀찮은 존재로 절락하여 외로움과 무료함을 참다못해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 결과 지금의 경기 전 일대는 노인의 무료함을 달래는 노인들만의 거대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지 이미 오래다.
이로 인해 퇴조로 일대 노인들의 유동인구는 봄, 여름, 가을에는 약 1만 명이 넘는 숫자가 모인다고 하니 조그마한 소도시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경기전을 지나가게 되었다. 마침 정자밑 평상에 자리 잡은 노인그룹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대화 내용이래야 대부분 허무맹랑한 것들이었다.
왕년에 군 대표 씨름 선수로 출전했다가 3등을 하는 바람에 송아지밖에 못 타왔다면서 은근히 힘자랑을 하는 노인은 수전증을 앓고 있어서 손에 쥔 젓가락이 위태로웠고,
젊어서 금광을 했는데 돈을 포대로 실어 날랐다는 노인은 목욕을 얼마동안이나 안 했는지 찌든 악취가 내 고개를 돌리게 했으며,
면장을 지냈다는 노인은 아들들이 외국에 가서 떵떵거리고 사는데 본인은 외국이 싫어서 신리 한 골짜기에서 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살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 친구 부모들의 경우를 보아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허다하다. 7.80 년대 중반 건설경기 붐으로 건설업체는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신흥 부자가 많이 나타났다. 부자의 수식어인 백만 장자 부모도 더러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현상은 또 다른 모습이다. 신흥 부자들은 비합리적인 재투자, 경영능력 부족, 혹자는 도박으로 그 재물을 소실해 버려서 부호의 명단에서 이름이 사라진 이도 많다.
갑자기 지혜로운 한 선배가 생각난다. 대전에서 사업을 하는 시각장애인 선배인데 근면, 성실하고 헛돈을 안 쓰기로 이름이 난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 팔순 잔치에 지인들을 초대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그의 옆에 앉아 있는 동안 계속하여 동생들과 제수씨, 여동생들까지 들락날락 하면서 상황을 보고 하는 것이다.
지금 몇 명이 다녀갔고 누구누구가 새로웠다. 술이 모자랄 듯하여 다시 추가 주문했다. 고기는 충분한데 떡이 어떨지 모르겠다는 등등.
나는 형님이라서 동생들과 제수씨 심지어 조카들한테까지 대우를 받고 인정받는 그 시각장애인 선배가 너무 부러웠다.
시아주버니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위해 주는 동기들이 존경스러웠다. 내가 그 형님께 말을 건넸다. “형님은 대단하지요. 아우들과 제수씨가 저리 잘하니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선배가 “이 모두가 돈 덕이라네. 돈 힘이란 말일세. 이번 팔순 잔치에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했거든.” 이란 말을 할 때 방안에는 제수씨와 동생이 같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그들이 있는 줄을 인식하지 못하고 한 말이었다.
과거에 화려했던 시절을 보낸 신흥 부자들이 어느 허름한 대포 집에 모여 앉아 경기 전 정자 밑 평상에 앉은 노인과 마찬가지로 나도 과거엔 종업원이 몇 명이었네, 하면서 옛 이야기를 하고 있을 동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 경제의 불황이 심해짐에 따라 우리 서민들의 생활도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리는 앞에서 얘기했던 색소폰을 불던 그 노신사 할아버지의 인생사를 거울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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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송경태 (skt221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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