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복지뉴스

[나의 대학 합격기]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09학번 김성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회 2,565회 작성일 09-04-02 09:06

본문

선천성 백내장 딛고 꿈 이뤄… "긍정적 생활로 모든 일에 자신감 생겼어요"
올해 입학사정관제인 다빈치형인재 전형으로 중앙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한 김성현(19·서울 잠실고 졸)군은 보통 사람보다 시력이 좋지 않다. 선천성 백내장을 갖고 태어나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2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4살 때는 눈 합병증으로 입천장에 달라붙은 혀를 떼어내는 수술까지 받았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고도 양쪽 시력이 0.2, 0.3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고교 시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이웃을 도왔고, 입학사정관으로부터 그 노력을 인정받아 대학에 합격했다.

◆스스로에게 당당해지기

선천적으로 눈이 좋지 않아 돋보기 안경을 썼기 때문에 어린시절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너는 눈이 왜 그러냐" "이상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서러워서 엉엉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모님께 "내 눈은 왜 이래"라며 반항하기도 했다. 모든 일에 소극적이 됐고, 성격은 소심해졌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 스스로에게 힘을 북돋웠다. "어차피 눈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부끄러워할 필요도 전혀 없다. 자신감 있게 살자"라고 생각했다. 우선 생활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기로 했다. 반장선거에도 일부러 도전했다.

확 달라진 모습이 대견해서인지 친구들은 기꺼이 투표를 해 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반장이 됐다. 이후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계속 반장을 했고, 6학년 때는 학생회장에도 당선됐다. 중학교 때도 계속 반장과 학생회장을, 고등학교에서도 2~3학년 때 반장을 했다.

김군은 "스스로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계속 위축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며 "나 자신에게 당당해지면서 모든 일을 자신감 있게 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의 의미 깨달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베풀며 살라는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집 근처 종합사회복지관에서 결식아동과 독거노인, 장애인들에게 밑반찬을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됐다. 이 때만 해도 봉사활동은 생활의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계속 하던 도중 그에게 봉사활동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중2 여름방학 때 여느 때처럼 밑반찬을 들고 중1때부터 봉사활동을 했던 풍납동의 한 독거노인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독거노인은 이미 숨져 있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복지관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이후 독거노인 집에서 유서로 보이는 글이 발견됐다. 여기에 "매주 반찬을 갖다 주는 성현이에게 너무 감사하다"라는 구절이 써 있었다.

김군은 "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며 "조그마한 봉사에 불과하지만 이 분들께는 너무나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내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원봉사동아리 '나누미'를 만들어 매주 수요일마다 독거노인 가정 방문 등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어린이 화상환자 후원회인 비전호프에 가입해 어린이 화상치료 의료보험 확대를 위한 서명운동을 매달 실시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정신지체 장애아동과 1대 1 결연을 맺는 '하나래' 활동에 참여해 한 달에 두 번씩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동갑 친구를 돌봤다. 노원구의 복지관을 찾아 금요일마다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 지도 활동도 했다. 교내에서 자원봉사단 '초아 모꼬지'를 만들어 발달장애아동과 1대 1 멘토활동을 시작했다.

김군은 "선천적으로 눈이 좋지 않아 원래 꿈은 안과의사가 되는 것이였는 데 봉사활동의 보람을 깨닫게 되면서 사회복지 전문기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며 "봉사활동을 할 때마다 반드시 사진 등 자료를 첨부한 봉사활동 기록부를 남겨 활동내용을 스스로 점검하고 평가했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

워낙 많은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주말은 통째로 사회복지관 등에서 보내기 일쑤였고, 평일에도 저녁시간에 봉사활동을 할 때가 많았다.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공부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우선 하루에 공부할 양을 정해놓고 해야 할 분량은 반드시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수업시간에는 항상 맨 앞줄에 앉았다. 눈이 워낙 나쁘기도 했지만 최대한 선생님 가까이에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필기는 가능한 한 교과서에 했다. 참고서가 단권화되는 효과를 가져와 시험 치기 전에 교과서만 봐도 모든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공부가 가장 잘 됐던 시간인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집중해서 공부했다.

김군은 "평일 봉사활동은 아무리 늦어도 밤 11시 전에는 끝나기 때문에 스스로 정한 공부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며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겨져 공부시간에 더욱 집중해서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부에 대한 집중도가 커지자 능률도 높아졌다. 사회복지 전문기자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공부시간을 더 늘릴 순 없었지만 성적은 오히려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고1 때 전교 100등에서 2학년 때 70등, 3학년 때 50등으로 올랐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공부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자신의 진로 문제에 대해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설계해 보는 것입니다. '성적이 나오는 대로 대학을 가야지'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자신의 진로를 확고하게 세우면 대학이나 학과 선택도 미리 할 수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공부에도 더 전념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