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장애인콜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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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12-0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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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커피숍에서 책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10분쯤 후 한 여자가 바삐 커피숍 안으로 들어와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남자는 “괜찮다”며 미소로 답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약속시간을 10분 정도 늦은 거라면 이 남자처럼 가볍게 미소로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 3시간씩 기다린 후에야 상대방이 왔다거나 혹은 기다렸으나 결국 상대방이 오지 않아서 바람을 맞는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어떻게 될까?
‘코리안 타임’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약속시간에 늦는 행동이나 버릇을 이르는 말로 한국전쟁 때 주한 미군이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오는 한국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한국인은 약속 시간에 늦게 도착한다. 이것이 한국인의 시간관이다’라고 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요즘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면서 ‘장애인콜택시타임’이란 신조어가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왜 이런 걱정을 하게 됐냐고 묻는다면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면서 약속시간에 늦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콜택시를 신청하고 택시가 연결되기까지는 빨라야 한 시간, 길게는 3, 4시간씩이나 기다려야 한다. 한번은 약속시간이 너무 지나서 결국엔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바람 맞춘 적도 있었다.
차량운행 방법도 바뀌어야
장애인콜택시는 서울시설공단에서 서울시내 1, 2급 중증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위해 2003년 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일반 택시나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중증장애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제도이다. 그런데 2008년 7월부터 이용요금이 인하되어(5km까지 1,500원, 5km초과 10km까지 : km당 300원, 10km초과부터 : km당 35원) 이용자 수가 더욱 증가하면서 차량 연결 대기시간이 길어짐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용자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차량수이고 해결방법은 차량수를 더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차량 수만 늘리는 것으로 다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와 함께 차량 운영방법의 개선도 필요하다
첫째, 차량운행 시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총 8개조로 나누어 오전 7시에 75대를 시작으로 1시간 간격으로 25대씩 추가 투입되어 12시~17시까지 175대가 운영되고, 오후 5시 이후에는 다시 줄어서 약 57%인 100대만 운영을 하고 이후 1시간 간격으로 다시 25대씩 차량이 줄어든다. 그래서 오후 5시 이후에는 더욱 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기가 어렵다.
생각해보면 오후 5시 이후야말로 외출했다가 귀가를 한다거나 직장에서 퇴근을 하는 시간대이므로 가장 이동이 많고 그래서 장애인콜택시가 필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이동이 시작되는 시간에 오히려 차량수가 줄어드는 운영 방식은 진정 이용자를 고려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장애인들은 다 낮 시간에만 이동을 하고 해지기 전에 모두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용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시간에 콜택시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이용자와 차량 연결방식에 대한 개선 또한 필요하다. 콜센터에 택시를 이용하고자 신청을 하면 들를 수 있는 말은 “대기자가 많다”, “주변에 차량이 없다”, “알아보고는 있으나 언제 연결이 될지 알 수 없다”의 3가지로 요약된다. 한 마디로 너무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업무 특성상 정확한 시간을 안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콜센터와 콜택시 운전자가 보다 긴밀한 정보 공유와 소통으로 콜센터는 이용자에게 보다 정확한 일정과 정보를 안내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같은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아무런 정보도 없이 막연히 기다리는 것과 대략적으로라도 일정을 알고 대처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하라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제도라고 해도 실 이용자가 불편을 느끼고, 그래서 결국 외면한다면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없다. 한 장애인콜택시 운전자에게 들으니 시설공단에서는 매월 여론조사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조사를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생긴다. 자주 여론조사를 하는 것에 비해서 제도에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콜택시 제도가 실정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 이용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반영하여 개선해 나가는 제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장애인콜택시타임’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기우로 그치기를 바라 본다.
* 이 칼럼은 장애여성네트워크의 웹진 내책상위의 수첩(pocketbook.kr) 2009년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 칼럼니스트 박주현은 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꾸준한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장애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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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주현 (dwnetwo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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