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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식개선의 창조적 파괴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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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370회 작성일 09-11-1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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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가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이른바 ‘패러다임’이라고 하며, 이것은 바로 과거에 익숙한 것에서의 창조적 파괴의 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오늘날의 시대는 사고, 행동, 가치들이 너무나 압축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런 변화의 현상들은 부지불식간에 사회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한 사회의 문화, 의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급변하는 시대 변화의 상황에서 그간의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의 접근 방식도 이제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그간의 일방적인 주입식 위주의 장애인 인식개선 접근 방식은 더 이상 국민들 사이에 진정한 공감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지 않을 뿐 더러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 인식개선 역시 시대의 변화 흐름에 맞추어 바로 잡아가야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바로 장애 인식 개선 접근방식에 있어서의 창조적 파괴로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이제 장애에 대한 시각 그리고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은 ‘일방적 배려, 혜택(수혜)’에서 벗어나 ‘상호적 공감’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나라는 경제의 발전과 동시에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문제가 압축적으로 크게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차별과 소외를 해소하고자 법이 다양하게 빠른 속도로 제·개정되고 있으며, 거리에는 장애인이 당연하게 거닐고, 직장에서는 장애인이 당당하게 일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완전한 편견해소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의 개선에 있어 사회 참여적 일자리의 제공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보편적 평등의 가치 추구로서 새로운 사고, 새로운 인식이 우선적으로 자리매김 되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장애인의 인식개선의 창조적 파괴가 왜 중요한가는 ‘앤서니 기든스’의 적극적 복지의 언급에 잘 나타나 있다고 본다. 기든스는 “평등을 추구하는 복지는 본질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고, 잘사는 것과 관련되므로 심리적인 개념이며, 경제적인 혜택이나 이득은 사실상 복지를 창출하기 위하여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하였고 따라서 복지제도는 경제적 혜택 뿐 만 아니라 심리적인 혜택이 조장과도 관련되어야 한다.” 라고 했다. 이 행간의 뜻은 바로 불평등을 극복하는 상호 존중과 이해를 통한 소중한 인간존재로서 인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공감의 연대일 것이다.

지금까지 장애 인식개선의 핵심적 이슈가 장애에 대한 편견 해소 그리고 차별금지 등 강제하는 논리로 주장하고 강조해왔다면, 앞으로는 장애를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공감’을 바탕으로 포용과 융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르다는 것, 불편하다는 것을 공감한다는 것은 일방적이고 막연한 배려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공감한다는 것은 바로 장애를 인정하고 그 장애를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생각하는 의식적 변화이며, 이것이 바로 창조적 파괴이다.

편견은 차별을 유발하고, 차별은 소외를 유발한다. 편견과 차별은 일방적인 배려문화이다. 배려문화는 우열(優劣)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공감문화는 평등을 전제로 하고 있고,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그대로 드러내고, 참여하는 인간중심 진정한 문화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의 의식 발상의 전환이 왜 그리도 중요한가라는 의문에 최근의 다문화의 확산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보편적 평등으로 인간 가치 중심의 사회 지향에는 다문화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왜냐면 다문화는 바로 다양성 가치 추구이기 때문이다. 상호간의 인정이고 상호간의 존중이고 상호간의 공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지구촌은 다양성이 보편화되고 다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다문화, 다양성은 바로 미래의 보편적 평등을 추구하는 복지사회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복지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기존의 장애 인식개선 접근 방식을 편견과 차별의 극복?해소만을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역행하는 장애와 비 장애의 경계를 그어 놓은 전제가 되며, 다른 인간의 모습 차별적 인식이다.

장애라는 것은 그냥 사회에서 사실적으로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장애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인식이 시민사회에 체질화(體質化) 될 때 참된 사회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바로 다양한 사람을 인정하는 공감 문화이요, 다문화 이며, 다양성 문화이다.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만이 아니고 장애인만의 해결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감 속에 사회 속에 녹아있어야 한다.

장애의 인식 개선 실천에 있어 배려(care)문화는 공감(sympathy)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배려는 바로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에게는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대상이라는 것이며, 바로 차별이다. 그러나 공감은 호조(互助)이다. 서로 공감하고 서로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장애는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것이다. 왜냐면 장애인 없는 인간은 없다. 이것을 우리는 공감하여야 한다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아이들에게도 장애에 대하여 배려, 동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공감 그리고 사실적으로 장애를 인정하고 보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식일 것이다. 아이들이 손이 없는 사람, 발이 없는 사람을 보고는 부모들은 “저 사람들 차별하지 않되“ 하는 것 보다 “그냥 아이들 생각에서 ”아저씨 왜 팔이 없어요? 물을 때 “아! 아저씨는 팔을 사고로 잃어버렸어 아! 그랬구나! 이것이 바로 공감이요, 사실적 인정이다. 우리사회가 이렇듯 자연스럽게 솔직하게 인간적으로 녹아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장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구석구석에 자리 잡아야 한다.

장애인이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무리 줄기세포가 실용화 된다고 해도 인간을 완벽하게 전지전능한 슈퍼맨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애는 그냥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현상이다. 오히려 장애가 없는 세상은 비이성적인 사회이다. 장애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고 차이가 없는 사회 또한 불가능한 사회이다.

따라서 장애에 대한 사실적 인정 그리고 공감성은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장애가 없는 세상은 전제주의 사회이다. 장애가 있는 그대로의 공감하는 사회가 바로 미래지향적복지사회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장애인의 인식개선의 접근에 있어 장애와 비 장애와 구별하는 배려문화에서 장애와 비 장애의 언어가 우리의 잠재의식에서 사라지는 '공감 문화'로 가는 것이 장애인식 개선의 미래 지향적 창조적 파괴이며, 또한 더욱 평등한 사회연대를 만들어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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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류규열 (ryukr@kepad.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