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입양아의 대모 그리고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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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10-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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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에서 50년 동안 입양아들과 함께해온 6만명 입양아의 주치의 조병국 전 원장이 쓴 버려진 아이들 얘기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삼성출판사)는 희망가이자 기적의 신화다. 오직 사랑으로 연결된 이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이기주의, 냉혹함 속에서 어떻게 기적을 일궈내는지, 한 줄 한 줄이 가슴 먹먹하게 한다.
빼어난 예쁜 얼굴로 병원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영희가 피부 괴사와 설사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간호사의 곶감 달인 물을 마시고 회생한 얘기, 지체 장애인들로 구성된 ‘영혼의 소리로’의 합창단 활동을 통해 순하게 변한 현군이, 버림 받아 미국으로 입양됐던 지체장애아가 의사가 돼 돌아온 얘기 등은 되읽어도 감동이 깊다.
50년 동안 숱한 아이들을 받고 보낸 조 원장은 아이 모두의 특징을 얼추 기억해낸다. 하나하나 가슴으로 이들을 낳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터다. 그가 이름을 붙여준 아이들도 적지 않다. 아이가 자라서 딴 모습으로 찾아와도, 이름이 바뀌어도 그는 오랜 어지러운 기억의 창고 한 편에서 아이를 찾아낸다. 핏덩이 상태로 병원에 던져진 배고픈 60년대 고아들의 얘기. 비밀 입양의 그늘 등 우리의 입양문화의 다양한 모습도 들어 있다.
TV를 거의 안 보는 그가 TV를 유심히 볼 때가 있다. 탤런트 김태희가 나올 때다. 그가 이름 붙여준 아이가 생각나서다. 파양의 상처를 지닌 아이의 심리, 아이에게 가장 큰 선물인 ‘엄마’의 존재, 입양 후에 장애아란 걸 알게 된 이들의 반응 등은 입양이 단순히 허울 좋은 사랑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운다.
국내 입양이 느는 등 입양에 대한 인식이 바뀐 데는 조 원장의 역할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는 입양을 ‘선물’이라고 말한다.
“죽는 순간까지 내 인생이 해피엔드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니 부모 없는 아이들의 인생을 성급하게 점치지 말 일이다. 그 아이들의 앞날에 어떤 선물이 숨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윤미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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