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자’…절제의 미덕, 여운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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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10-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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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여행자’는 한국의 어린 소녀가 해외로 입양을 가기 전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해외 입양은, 고아로 사는 것보다 선진국으로 입양을 가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개인이 겪는 인종 차별과 자아개념의 불확립 등으로 정서적인 불안과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기존에 다뤘던 입양에 대한 이야기보다 ‘여행자’가 더 특별한 것은 바로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우니 르콩트(Ounie Lecomte)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감독이 아홉 살이었을 때 프랑스로 입양가기 전 서울의 한 고아원에서 보낸 1975년에서 1976년까지의 기억을 더듬어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
이 영화가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처럼 철저히 비극으로만 비춰지지 않는 것은, 우니 르콩트 감독은 프랑스에서 유능한 의상 디자이너로서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이 이야기는 나의 개인적인 상처의 극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 이별과 사랑에 관한 드라마”라며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애쓰기 보다는 일상 속에서 상처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부제로 ‘아홉 살 소녀의 첫 이별 이야기’라는 문구가 붙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아빠와 여행을 떠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던 진희(김새론 분)는 그 여행 종착지가 바로 보육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빠에게 버림 받은 충격에 진희는 식음을 전폐하고 보육원 탈출도 시도해보지만, 조금씩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고 서툰 걸음으로 새로운 환경에 발을 내딛는다. 같은 보육원에 있던 언니 숙희(박도연 분)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며 ‘늘 함께 하자’는 굳은 약속을 하지만 결국 숙희는 미국으로 입양돼 진희 곁을 떠나게 된다. 다시 혼자 남겨져 방황을 하던 진희는 훗날 프랑스로 입양을 가게 된다.
영화는 하나의 긴 호흡으로 천천히 쉼을 내쉬듯 잔잔히 흘러간다. 해외 입양아라는 주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영화 속 캐릭터들을 나지막이 바라보는 시선은 매 신마다 여운과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절제와 여운이지만, 매 장면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긴장감 있게 완성되어 흐른다.
‘식모살이 하러 입양가기는 싫다’고 울던 장애인 영신(고아성 분)을 떠나보내던 날, 널어놓았던 이불을 말없이 몽둥이로 내리치며 울던 보모 아줌마(박명신 분)와 자살을 시도했던 영신이 보육원 아이들에게 ‘다시는 귀한 목숨을 함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라며 맹세를 하는 장면에서 다함께 웃음이 터트리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각각의 캐릭터와 애절한 감성을 잘 살려낸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돋보인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아이들과 억세지만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보모 그리고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이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외국인 부부들까지 각 캐릭터마다 색이 선명하다.
'여행자'는 몇몇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던 르콩트 감독이 세계 어느 누구와도 직접 교감하고 감성적인 공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3년 전부터 영화 공부를 해 내놓은 첫 작품이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우니 르콩트 감독은 “처음에는 그냥 아버지를 잃은 프랑스의 어린 소녀 이야기였다”며 “쓰다가 보니 어느 순간 막혔는데 내가 매우 추상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가가 나의 체험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행자’는 이창동 감독이 공동각본을 맡았으며 설경구와 문성근이 우정 출연했다. 프랑스와 한국의 첫 합작 영화이며 칸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작으로 꼽혔다. 국내에서는 29일 개봉되며 프랑스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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