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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이 선택하는 스타일을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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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411회 작성일 09-10-2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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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화된 장애인의 모습

대학교 다닐 때, 스터디에 늦으면(자주 늦었다) 멤버들이 밥 사라고 볶아 댔다.

나 : 너흰 어떻게 장애인을 등쳐먹니?(한숨)

친구 : (피식) 네가 무슨 장애인이야?

난 지체장애 2급이고, 휠체어를 탄다. 그냥 봐도 장애인이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날 장애인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나 같은 중증장애인이 장애인이 아니라니, 그럼 장애인은 누굴까? 여러 관점에서 비장애인에게 '정형화한 장애인의 모습'을 말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외모에 대해서만 살짝 얘기해 보고 싶다. 다 하자면 끝이 없으니….

사회에 나올 때까지 다른 장애인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던 나는, 지난 10월 14~19일 인사동에서 열었던 '장애여성 이야기가 있는 사진전-몸으로 말하기'를 준비하면서 크고 작게 놀랄 일이 많았다. 미용실에 가고, 대형 커피 체인점에서 커피를 주문하는 당연한 일상이 어떤 장애여성에게는 용기를 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니.

거추장스러운 머리?

물론 그런 일이 내게도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마다 상황도 성향도 다른 거니까. 예를 들어,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머리는 반드시 원하는 미용실에서 해야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집이라도, 바닥에 앉는 좌식 식당엔 가고 싶지 않다. 한끼 먹는 데 그 정도의 수고로움까지 감수하긴 싫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휠체어 유저분들 중엔 그 반대인 분들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내 맘에 드는 스타일대로 머리를 하고, 옷을 입는 일이 당연했던 내게 '엄마 잘 못 만났으면 어울리지도 않는 숏커트만 하고 다닐 뻔했구나'하는 깨달음이 온 적이 있었다(요즘은 꼬마들도 다 자기 스타일이 있는데!). 90% 이상의 국민이 오지랖퍼인 이 나라의 매우 전형적인 아주머니 상의 친척 한 분이 지난 여름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처음 뵙는 먼 친척이었는데,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잘 준비를 하는 나를 보더니 대뜸 그러신다.

"너, 머리 네가 스스로 감는 거 아니지? 거추장스럽게 너무 많이 기른 거 아니냐? 좀 자르지…."

혼자 머리를 감을 수 있다는 이유로 지체장애 1급이 아니라 2급 판정을 받았던 나는 억울했다. 설령 혼자 머리를 못 감는다 해도 그렇다. 지금보다 머리숱이 많았던 어릴 땐 엄마가 매일 감겨 주시곤 했지만 그때도 난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였는데…. 이건 히피머리를 한 직원에게, 단정해 보이지 않으니 머리를 자르라고 말하는 상사나 "내 이상형은 긴 생머리니까 여친도 항상 그래야 한다"고 우기는 남자와는 또 다른 차원의 간섭이다.

지적장애여성과 영구머리

'나보다 더 중증이어서 화장할 때도, 샤워할 때도 도움이 필요한 장애여성들은 눈치가 보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 얼굴로 레이스나 리본이나 스팽글이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으면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자연스레 옷차림에도 제약을 받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더 이상 일을 안 하시지만, 예전의 내 단골 미용실의 미용사 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미용사들과 장애인 시설로 봉사활동을 갔단다. 성격이 아주 화끈한 그 언니가 내게 성토하던 얘기도 생각났다.

"아무리 지적 장애인이 대부분이어도 그렇지, 여자애들 머리를 영구처럼 잘라 주면 어떡하냐!"

아마 다른 미용사들은 관리하기 편한 숏커트로 잘라 주는 모양이었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얘길 들으면서 상상해 본 결과는 황당했다. 돌바기 아이도 예쁜 걸 아는데, 지적장애여성이 그런 걸 모를까.

장애여성도 여성이다

'타이라 쇼'에 나온 어떤 심리학자가 말했다. 주위에서 계속 부정적인 얘기만 하는데 계속해서 자신감을 유지할 만큼 심리적으로 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장애여성의 여성성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아무도 장애여성의 외모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데, 개인적인 상황까지 그러하다면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는 걸 일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미친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한가운데서도 말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친구 클라라처럼,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장애여성 이미지완 달리 현실에선 화장 안한 맨 얼굴에, 칙칙한 옷을 입고 우울한 표정이라도 해야 '장애인'스럽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론 비장애여성이라도, 하체에 조금이라도 살이 있는 사람이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간 길 가다 스치는, 생전 처음 보는 남자들에게서 야유의 시선을 받는 사회이긴 하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매력을 돋보이게 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패션과 헤어스타일을 하든 유행과는 전혀 상관없이 강한 메이크업과 사시사철 매니시한 옷을 선호하든 장애여성도 여성이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녀가 선택하는 스타일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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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강은진 (dwnetwo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