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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체육만 잘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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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357회 작성일 09-10-2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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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언어교실에서 말을 배울 때 ‘사과 배 감’ 등 간단한 단어는 입모양을 보고 따라 할 수 있었으나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십니다.’ 등 긴 단어는 따라 할 수가 없어 야단도 많이 맞았다. 언어교실의 선생은 아이가 말을 못한다고 손바닥을 때렸다.

초등학교는 집 근처에 있는 고정초등학교를 다녔다. 학교가 가까웠으므로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1학년 때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하는데 모두가 짤막한 단어뿐이라 선생의 입모양을 보고도 쉽게 따라할 수가 있어 100점을 맞았다. 선생은 잘했다고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받아쓰기에서 100점은 1학년 때 뿐이었다.

2학년이 되자마자 구구단을 외었다. 2학년 선생은 그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그를 불러 구구단을 외우게 했다. 91은 9, 92 18, 93 27.... 천천히 2단부터 9단까지 다 외웠는데 언어치료 덕분인지 구구단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무사히 마쳐 선생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받아쓰기 그리고 구구단 외우기로 선생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반 아이들도 덩달아 박수를 쳤으나 그것이 그가 우쭐했던 칭찬의 마지막이었다.

학년이 높아지고 말이 길어지자 아무리 언어치료를 받는다 해도 따라 하기가 점점 더 어려웠다. 말을 못한다고 선생에게 야단맞고, 공부 못한다고 종아리도 맞았다. 잘 들리지 않지만 그래도 들어 보려고 노력했으나 들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렇게 심한 친구들만 있은 것은 아니었다. 비록 말은 안통해도 눈빛만 보고도 수화처럼 의사소통이 되어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동네에서 같이 놀기도 했다. 친구들과 오징어게임이나 야구나 축구도 했다. 어릴 적엔 운동을 무지 좋아해서 해가 질 때까지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나 축구를 했는데 그런 운동에는 말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어릴 때는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커면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어린 시절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6학년 2학기 때 고정리를 떠나 읍내 아파트로 이사를 해서 밀양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시골마을의 정든 친구 정든 학교를 떠나게 되어 섭섭했지만 어차피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외톨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밀양중학교는 고정리 시골 학교와는 사뭇 달랐다. 시골의 동네친구들은 장애라고 놀리지도 않았고 선생도 너그러웠으나 밀양의 선생은 무서웠고 친구들은 바보라고 놀리며 때리기도 했는데 생각하면 아픈 기억뿐이었다.

밀양중학교에서 그가 잘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선생은 조금씩이나마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었으나 잘 모르는 선생은 꾸지람만 하셨다. 글짓기대회에서 독후감을 쓰려고 했으나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몰라 망설이다가 대충 써서 제출했는데 안보상 교감선생이 장애인을 어떻게 보셨는지 예상치도 못했던 상을 주시며 용기를 잃지 말라하신 말씀은 힘이 되기도 했다.

언제나 첫 시간에는 출석을 부르는데 선생이 출석부를 꺼내들면 선생의 입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선생이나 학생들이 듣거나 말거나 “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는데 도철욱은 9번이라 1번부터 번호를 세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은 선생이 책을 읽어보라고 해서 내 딴에는 또박또박 잘 읽었는데 친구들은 킥킥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만 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잘 읽었겠지만 친구들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리라. 수업시간에는 교과서를 펴 놓고도 잘 들리지 않으므로 그림을 그리거나 딴 짓을 했다. 그래서 통신표에는 전부 양가 양가였고 딱 두 가지 미술과 체육만 수였다.

어떤 친구들에게는 왕따를 당하며 얻어맞기도 했다. 주로 ‘숙제 왜 안 해왔니’였는데 선생이 “니는 장애인이니까 숙제 안 해 와도 된다.” 했으나 반 아이들이 오히려 숙제를 다그쳤고 심지어는 뒤통수를 때리거나 밀치기도 했다. 그가 잘 못 듣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중학생이 되어서 친구도 별로 없었고 의사소통 잘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한 친구에게 다가갔다.

“손병희라는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어눌한 말투로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걸었는데 다행히 그 친구가 받아 주었어요.” 손병희는 자연스럽게 그의 귀와 입이 되어 주어 그가 있어 중학시절을 감사하게 보낼 수 있었던 소중한 친구였다. 도철욱씨 이야기는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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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 (gktk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