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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호랑이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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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407회 작성일 09-10-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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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외국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유는 정말 외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특수목적’고등학교라는 특별한 곳으로 진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외고로의 진학은 쉽지 않았다. 나와 같은 욕심을 가진 동급생들은 즐비했고 성적을 유지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경쟁이었다.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 보다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그렇게 입학했다.

영어과, 중국어과, 일본어과, 독일어과 이렇게 네 가지 전공으로 분류되어 한 가지 전공 언어를 선택해야했다. 난 부모님의 조언과 장래성을 미루어 중국어과로 지원했고 당당히 입학했다. 모든 고등학생들이 그렇겠지만 외고의 생활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환경부터 기본 교과목에 플러스 외국어까지 이수해야 했기에 그 부담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었을 뿐더러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후회감과 회의감은 학기가 지나면 지날수록 더해졌고 석차는 점점 밀리기 시작하며 내 스트레스는 더해져만 갔다.

야간자율학습 시간. 밀려드는 스트레스에 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토록 배우고 싶던 외국어는 왜 이리도 어려운지 점차 외면하기 시작했다. 머리도 식힐 겸 무작정 교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스르르 교실을 빠져나와 운동장 스탠드로 향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빠졌다간 큰 꾸중을 들을거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과감한 외출을 단행했다.

복도를 거쳐 밖으로 통하는 문에 다다랐을 때 선생님과 떡하니 마주쳐버렸다. 마주친 선생님은 다름 아닌 독일어 선생님. 전공이 중국어인지라 독어 선생님과의 수업은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난 이 선생님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 무섭기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마주친 순간 난 얼어버렸다. 선생님은 지팡이를 짚고 서서 엄숙한 목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야자 안하고 어디가는거야?”

독일어 선생님은 다름 아닌 장애를 가진 분이셨다. 한 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 장애가 있으셔서 항상 지팡이를 짚으시고 다리를 절고 다니셨다. 그 날도 역시나 내게 지팡이를 바닥에 꽉 찍으시고는 무서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저...잠깐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선생님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씀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셨다. 난 이제 죽었구나! 라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 안절 부절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천천히 입을 여셨다.

“너무 멀리가진 말고 일찍 자리로 돌아가거라.”

의외로 선생님은 나무라지 않으시고 과감한 외출을 허락하셨다. 난 너무 의아했던 선생님의 반응에 얼떨떨했지만 꾸지람 듣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이것저것 잡념에 빠지고 있었다. 방금까진 생각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는데 갑자기 독일어 선생님이 왜 혼을 내지 않으셨을까? 라는 생각으로만 온통 가득했다. 그토록 무서웠던 호랑이 선생님이 꾸중하지 않으셨던 그 날이 내겐 졸업하는 그 날까지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독어과 친구들은 몇몇은 절름발이 선생님을 따라하면서 장난을 치거나 싫어하는 표현을 하곤 했다. 이유는 뻔하다.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제동을 거는 게다가 무섭기까지 해서 그 어떤 반항을 할 생각도 못하기에 가끔 뒷담화를 하거나 저는 모습을 흉내내거나 했던 것이다. 하루는 너무 지나친 것 같아 좀 심한 거 아니냐는 말에 시비가 붙어 큰 싸움이 날 뻔했던 기억도 난다. 과감한 외출을 허락해주신 이후로 그 분은 내가 호랑이 선생님이 아닌 호감가는 선생님이셨고 수업은 들을 기회가 없었지만 가끔 마주칠 때 반갑게 인사드렸다. 그 잠깐의 대화와 배려에 이렇게 깊은 인상이 남게 된 것은 신체적 특별함 뿐만 아니라 내적 특별함도 지닌 너무나 좋은 선생님이셨기 때문이다.

수학능력평가라는 대 시험을 치루고 이제 졸업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대학 합격이 결정되고 그 동안 정들었던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면서 독일어 선생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다. 선생님은 수업도 한번 듣지 않은 내가 찾아온 것이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보이셨다. 마치 나의 외출을 허락해 주신 그날의 내 표정처럼.

“선생님, 중국어과 저 기억하시죠?”

“응. 그, 그래. 기억하고 말고. 아무튼 졸업 축하한다.”

“저...선생님 예전에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말입니다. 제가 무턱대고 나가는데 선생님께 딱 걸렸었어요. 이제 죽었구나...라고 얼어있는데 선생님께서 의외로 허락해 주셨죠. 왜 허락해주셨어요?”

선생님은 그 사소한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냐며 환한 웃음을 보이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있지. 제자의 표정만 봐도 심정을 읽을 줄 알아야한단다. 네가 비록 내 수업은 들은 적 없던 자주 마주치지 않았던 학생이지만 네가 그 날 일을 기억하듯 선생님 역시 그 날의 네 표정을 기억해. 넌 그 날 정말 많은 고민과 답답한 가슴에 막혀있는 얼굴이었지. 거기서 선생님이 널 야단쳤다면 네 꼬여있는 머릿 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 것만 같았어.”

그랬다. 선생님은 그 날의 내 표정을 한참 관찰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마음을 읽으셨다.

“선생님은 말이지 어릴 때부터 이렇게 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노력했지. 선생님이 되는 것도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남들 앞에, 더욱이 너희같은 철부지들 앞에 장애인으로 선다는 것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더 엄하게 대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다. 너희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려 많은 애를 쓴단다. 내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불편함도 빨리 파악을 하는 편이지. 신체적으로 부족하지만 마음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단다.”

선생님은 이렇게 내 마음 속에 남아 계신다. 가끔 학교를 찾아가면 여전히 지팡이를 짚으신 모습으로 그리고 여전한 미소로 반겨주신다. 자신이 부족함을 가졌기에 상대방의 부족한 면을 찾아 채워주시려 했던 최순경 선생님. 지금도 많은 후배들에게 보이지 않는 사랑을 채워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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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장기웅 (brainstorm81@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