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봉사’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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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10-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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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과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과외를 매개로 ‘봉사’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년 정도 한 장학 재단의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기초수급생활대상자 가정의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장학금을 받는 대가로 일종의 ‘아르바이트’라고 생각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중간에 아이들과 정이 들어버려서 장학 지원이 종료되고 나서도 1년이나 더 ‘봉사활동’으로 아이들의 학습 지도를 계속했다.
장애인과 ‘봉사활동’이라, 이 얼마나 어울리는 조합이란 말인가. 수업을 하기 위해 복지관 교실 선생님 책상에서 출석부를 쓰다가, 누군가 들어와서 “그 자리 봉사자 선생님 자리에요. 나오세요.”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과자 상자를 들고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집사님들이 내게 콘칩 한 봉지를 건네며 안수기도를 해 준 일도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을 인솔해서 ‘보호자’로 서울랜드에 놀러갔을 때엔 놀이기구 직원이 나의 ‘보호자’가 누구냐며 내 학생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선생님으로써 폼 안나는 에피소드들을 몇 개 겪은 후에,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내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타인에게 도움을 받은 만큼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었는데, 장애인인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건지, 어느 날 내 스스로 이 봉사활동을 계속해낼 의지가 사라져버렸다. 그래, 좋게 말해서 도움을 받은 만큼 베풀자는 거였지, 사실은 늘 ‘봉사를 받는 대상’이라는 위치에 있다가 ‘봉사를 베푸는 사람’의 위치로 아이들 위에 서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장애인에게 행해지는 시혜와 동정을 깨뜨리자고 외치면서도, 아이들을 동정하기도 하고 내가 그들에게 ‘베푸는 사람’이라는 우월감에 우쭐대기도 하고, ‘얘들은 이래서 안 돼’라며 가난한 아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산하기도 했다. 돈을 받고 가르치는 과외 학생들에게는 꽤 쿨하고 격의 없는 선생님이었는데, 이 아이들에게는 간혹 권위적이기도 하고 거리가 느껴지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내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봉사활동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수업을 하던 교실에는 “배움과 배움, 서로가 서로에게”라는 급훈이 적혀 있었다.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과목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가르치면서도 늘 무언가를 얻어가게 되는 봉사자들도 그 과정이 늘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는 과정이기를 바라면서 누군가가 적어놓은 문구일 것이다. 봉사활동도 과외 아르바이트도 대학원 공부를 핑계로 그만둔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한 발 떨어져 생각해보건대, 봉사라는 활동이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선순환의 과정이었으면 한다. 봉사활동을 나온 교회 집사님이 건네주는 원치 않는 과자 한 봉지에서, 아이들에게 내지르는 화 한 마디로 전해지는 악순환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 사이의 교감에서 멘토와 멘티 사이의 배움의 과정으로, 그렇게 전해지는 과정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지금 나부터, 지금 당신부터 그 고리를 시작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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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문영민 (saojung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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