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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무사고 운전자가 운전자보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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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669회 작성일 09-09-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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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머티즘으로 인한 지체 1급 장애.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무릎의 관절은 염증으로 연골이 말라버려 인공관절 대체를 위한 열한번의 수술과 평생 진통제를 복용해야 거동이 가능함.’

망가져버린 한 여자의 몸, 그 사용설명서를 보고 그 어느 보험사도 운전자보험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15년이 넘는 무사고 운전경력이지만 지체 1급 장애인이라는 치유할 수 없는 전과는 보험사 측으로부터 철저한 거부대상이었다. 덕분에 보험에서 자유로운 나는 사회의 제도가 주는 구속에서 너무 자유로워, 외롭고 무서움에 떨어야 하는 소외된 자유인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2008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와 제17조에 ‘금융상품 및 서비스의 제공자는 보험가입 등 각종 금융상품과 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에 명시까지 되어있으니 이제는 보험가입이 가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도 나는 세 보험사로부터 변함없이 거절을 당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험사에 미치는 위력은 ‘협조문구’ 정도에 불과 했던 것이다.

미래에셋의 컨설턴트인 이형신씨가 사무실 문을 두들긴 것은 7월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이었다. 재태크 설계전문가와 상담과정에서 장애인보험에 관한 문제에 화두를 던지며, 15년의 무사고 운전경력인데도 불구하고 1급 지체장애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거절을 당해야만 하는 불평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었다. 이형신씨는 타 보험사에 문을 두들겨 보겠으나 너무 큰 기대는 갖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땅한 보험사를 찾던 중 제일화재 직원으로부터 해보자는 제의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제일화재 담당자가 서류를 올렸을 때 위로부터 ‘정신 나갔느냐’라는 지극히 당연한 처리결과를 전해 들었다. 이번 기회에 ‘모든 국민은 헌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 대신 ‘장애인을 제외한 모든 국민은 헌법 앞에 평등’으로 바꾸든지, 아니면 항상 제도권에서 소외당하는 장애인을 대표해 총대를 들고 돌격을 하든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래 총대를 들자.

“전북여성장애인연대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이름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전북도내에 있는 장애인단체와 연계하여 장애인신문과 지역신문 그리고 인터넷신문에 이 문제를 이슈화 시키겠다고만 전해 주십시오.”

이형신씨와 재도전을 다짐하며 중증장애인에 대한 보험차별의 심각성을 논의하였다.

2009년 8월 11일, 나는 운전자보험에 가입을 하였다. 보험 상품보다는 가입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일이다. 긴 시간과 많은 투쟁이 있어야 하리라는 각오까지 했었는데 생각보다 수월한 가입이었다. 지난 날 여러 보험사에 가입의사를 밝혔다가 거절을 당했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한 적도 있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경험상 넘기 힘든 높은 벽을 예상했는데 의외로 쉽게 그 벽을 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쉽게 된 것은 절대 아니에요. 광주를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의사전달도 했고요.”

지체 1급 장애인을 운전자보험에 가입시키기까지 치렀던 고난을 이형신씨는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객이 선택하는 ‘선택담보’란은 몇 항을 제외하고 보험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가입을 막아 놓은 것이다. 선택의 여지를 물었지만 없단다. 무면허나 뺑소니 사고에 대한 특약은 꼭 선택하고 싶었던 부분이건만 이것도 사측이 ‘미가입’으로 기재하여 견적서가 나왔다. ‘가입거부’라고 기재가 되어야 하는 란에 고객이 가입을 원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가입’이란 기재 자체는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고객의 의사결정을 무시하며 이루어진 운전자보험은 끝내 차별이라는 벽을 온전히 넘지 못한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장애유형에 따른 가입조건이 명시되지 않고, 차별을 하지 말라는 무조건적인 법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곤란합니다. 전문가의 판단에 의해 사고위험이 높은 조건의 장애인에겐 국가가 보험료나 보험금의 일정금액을 지원한다면 보험사 측에서도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채찍만 휘두를게 아니라 당근도 같이 바란다는 것이지요.”

운전자보험에 가입을 하고도 차별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말하는 지체 1급 장애인고객을 향해 이형신씨는 무던히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보험사와 장애인의 관계는 보험사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장애인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많이 낸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는데, 장애인이라면 모든 능력이 기준이하라는 사회적 편견이 빚은 결과라 할 것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조건부 가입이든 정부의 지원이든 당근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보험사들이 장애인운전자의 교통사고 통계가 비장애인운전자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근거제시를 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무조건 장애인만의 편의를 위한 법은 아니다. 지금껏 차별 받고 소외되어 살아온 장애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자는 발로에서 제정된 법이다. 장애, 비장애의 구별 없이,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바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다. 보험사도 이기고 장애인도 이기기 위해서는 보험가입의 현실적인 대책이 정책차원에서 조속히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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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영희 (rupina5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