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풍경에 동화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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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9-2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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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년 가까이 학내 장애인권동아리 활동을 해왔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수많은 관계들을 맺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있고, 가장 의지하고 있는 이들은 이 활동에서 만난 장애인 친구들이다. 학창시절 12년 동안 나는 장애인으로의 정체성을 거부했고, 장애인 모임에 나가본 적도 없으며, 물론 장애인 친구를 사귄 적도 없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왔다. 활동을 하며 수많은 장애인 친구들을 만났다. 그동안 혼자만의 것으로 생각했던 고민들을 그들과 쉽게 공유할 수 있었고, 늘 위안을 얻었고, 때때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캠퍼스에서 장애인 친구들과 마주치는 것이 어색하다. 파스텔 톤의 가로수들을 배경으로 원색 비닐 옷을 입고 서있는 장애아들을 그린 그림마냥, 그렇게 어색해 견딜 수가 없다.
한 친구가 처음으로 다른 장애인인 친구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평생 거울을 보지 않고 지내던 이가, 처음으로 거울을 통해 흉한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의 어색함을 이 문장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색해한 것은 원색의 옷을 입고 나와 눈이 마주친 거만한 남자아이 혹은 캠퍼스에서 다른 휠체어를 타고 마주치는 친구들이 아니라, 그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본 내 모습이 아닐까. 누군가의 눈에 어색하고 부조화하게 비칠 캠퍼스 속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모순적이지만, 나는 이런 어색함이 지독하게 싫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 비장애인 친구들과 함께라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영화보기 같은 일상들이,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일 땐 너무나 어색하다. 나가서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땐, 우리는 아주 친함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이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물리적인 제약들 말고도 많은 심리적인 제약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하이힐을 신고 두꺼운 전공책을 안고 꺄르르 웃으며 걸어가는 너덧명의 여대생 무리들처럼, 휠체어를 탄 나의 친구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풍경에 동화될 수 있을까.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장애인이라면, 그와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거니는 평범한 연인이 될 수 있을까. 그 풍경이 자연스러워 보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고, 그 풍경의 ‘대상’이 될 자신도 아직까지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없음이 부자연스러운 ‘풍경’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의식하는 내 마음에서만 오롯이 기인하는 것인지 그것조차도 구별할 수 없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영국의 청각장애인 부부가, 자신의 아이도 역시 청각장애를 가져 서로의 장애를 아무 문제없이 인정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보았다.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장애를 인정하며, ‘농(聾)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인터뷰하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용기있는 결정을 존중하는 지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애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모순 없는 연대감, 그 ‘문화’가 주변 사회에 어색하지 않게 스며드는 모습. 붓놀림이 서툰 화가가 그린 것 같은, 하지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수채화 같은 그 ‘풍경’을 동경한다. 그것이 나의 그림, 우리의 그림이 될 수 있을까. 언제고 내가 풀어야 할, 그리고 언젠간 꼭 풀릴 수 있는 숙제 중 하나라고, 용기없는 나이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칼럼니스트 문영민 (saojung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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