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와 활동보조는 서로 갈 길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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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9-0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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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만 65세가 된 중증장애인이 이제까지 받아왔던 활동보조 서비스가 중단되고 대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장기요양 서비스를 받게 됐다는 사연이 소개된 적이 있다. 뉴스를 보면서 내용에 공감했던 이유는 현재 내가 이 두 가지 서비스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엄마가 쓰러져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게 된 이후로 우리 집에는 엄마의 장기요양보호사와 나의 활동보조인이 격일로 와서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인장기요양이나 장애인활동보조의 하는 일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이다.
우선 장애인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 활동보조 서비스는 장애유형이나 특성 또는 당사자의 사회활동 여부에 따라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다양하게 받을 수 있어 수요자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응하는 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요양 서비스의 경우에는 사회활동이 중단된 노인들에게 필요한 일상생활 지원과 간호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여전히 재활 패러다임에 기반하고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를 교육할 때에도 두 제도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활동보조인 제도에서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활동보조 교육에 참여하며 이론이 아닌 현실의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요양사 교육시에는 어르신들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심리학자나 노인복지 전공자들이 이론으로 노인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다. 어르신을 돌보는 교육에서 당사자들을 배제시키고 과연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한 걸까?
이론만으론 절대 부족할 것이다. 당사자의 시각이 없으면 아무리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도 당사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므로 결국 장기요양사라는 전문직은 전문직이 아니라 봉사자에 머물 뿐이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봉사활동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로 인해 전문 장기요양사에게 서비스를 받아야 할 어르신 중 불이익을 당하는 분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사자의 참여 여부가 관건
한편 장애인들의 경우 활동보조인에게 불이익을 당하면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스스로들 많이 알고있어서 응당한 대처를 하지만 노인들은 대처방법을 모르거나 번거로워서 공식적으로 이의 제기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요양의 이용시간은 바우처 카드나 동그리를 사용하지 않고 일지만 쓰는 것으로 체크하고 있어 허술하기 짝이 없다. 허술한 관리 시스템 때문인지 우리집에 파견된 장기요양사의 경우에도 시간 개념이 매우 부족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 어려웠다. 만일 어르신이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요양사가 들고 나는 시간이 불규칙해도 일일이 따지거나 파견 기관에 항의라도 하면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대부분 그냥 넘길 것이 분명하다. 제대로 된 관리 시스템을 갖춰 행여라도 서비스를 받고 있는 노인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장애인들의 활동보조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래서 활동보조 서비스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러한 문제들이 보완되어 왔던 것이다. 결국 장기요양제도가 지금 겪는 시행착오들은 초기의 활동보조제도가 겪었던 문제들과 비슷해 보인다. 장기요양제도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듯하다.
각기 전문 영역으로 자리잡아야
앞으로 정부에서는 활동보조제도와 장기요양제도를 통합해서 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이 두 가지 제도를 경험하고 있는 내 의견을 묻는다면 '반대'이다. 통합이 된다면 노인이나 장애인들 앙쪽의 피해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노인과 장애인은 다르다. 장애가 없던 사람이 나이가 많아 노인성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겪는 것과 만 3세 전 선천적 장애인들은 그동안 살아온 사회적 정서가 다르다. 같은 장애인일지라도 유형이나 정도, 살아온 환경과 정서에 따라 욕구가 다양하므로 각자 자신들에게 맞는 제도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노인에게는 노인에게 맞는 서비스가 필요하고 장애인에게는 장애인에게 맞는 서비스가 필요하므로 각기 전문적인 영역으로 자리잡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던 65세가 된 장애인들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권리를 당연히 보장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받아왔던 활동보조 서비스도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중증장애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었거늘 하루아침에 아직 제대로 정착도 되지 않은 장기요양 서비스로 옮겨가라는 건 서비스 대상자를 그저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편의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는 수요자의 욕구를 고려한 복지를 구현해야 할 성숙한 시대가 아니던가?
*칼럼니스트 김미송은 장애여성네트워크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성찰해나가고 있으며, 부조리한 사안에 마주하면 본인의 목소리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뇌성마비 장애여성이다. dwnetwork@hanmail.com
칼럼니스트 김미송 (graymenta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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