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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삶과 장애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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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762회 작성일 09-09-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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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4대 대통령이 된 버락 후세인 오바마는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 중부에서 자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바마의 어머니 스탠리 앤 여사는 18세 때 케냐의 1세대 유학생이었던 오바마의 아버지와 만나 결혼한다. 당시는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이 아직 만연한 때였으며, 마틴루터 킹 목사의 흑인 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도 전이었다. 그런 때에 흑인, 그것도 미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가난했던 아프리카 본토에서 유학 온 남성과 백인 소녀의 사랑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출생부터 특별했던 오바마는 이후에도 어머니의 삶을 따라 계속해서 일반적인 미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근대화를 위해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뒤 케냐로 돌아가며 어머니와 이혼을 하게 되었고, 혼자 남겨진 어머니는 몇 년 후 인도네시아 출신의 유학생과 재혼을 한 뒤 오바마를 데리고 인도네시아로 간다. 오바마는 1970년대의 가난한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성장하고, 그곳에서 가난과 이슬람문화, 그리고 당시 개발독재시기를 맞고 있던 인도네시아의 환경을 흡수하며 성장한다.

인도네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온 오바마는 이후 마약을 하는 등 방황의 시기를 거쳐 흑인 조직운동가가 되고, 30살의 나이에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정치인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결국 대통령의 자리에 까지 이른다.


두 가지 세계

오바마가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1년 뒤에 쓴 그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는 오바마의 드라마틱한 삶과 성공이 서술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그가 단지 자신의 ‘성공스토리’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무게를 갖는 부분은 바로 흑인도, 백인도 될 수 없었던 오바마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고뇌의 과정을 묘사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오바마는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다시 말해서 내가 몸을 피하거나 숨거나 혹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고서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외부 세상에 영원히 국외자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던 그 한결같고 무지막지한 두려움이 내가 어떤 판단을 할 때마다 늘 나를 덮쳤던 것이다.” p.203

나는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으며 장애를 갖고 특수학교에 입학했지만, 이후에 좋은 사람들의 경제적, 정신적 지지로 일반고교에 진학한 후 대학원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동안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문제도 바로 이것, 즉 내게 두 종류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쪽에는 중증의 장애를 갖고 특수학교를 졸업한 후 집으로 돌아가 한 달에 한두 번 외출할 뿐인 친구들의 세계가 있고, 다른 쪽에는 일찌감치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되거나 고위 공무원이 되어 결혼을 앞둔 친구들의 세계가 있었다.

아마도 전체 장애인의 절반이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밖에 가질 수 없는 한국사회에서, 운에 의해서든 본인의 실력에 의해서든, 수용시설을 떠나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된 장애인들은 누구나 오바마가 겪었던 것과 같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많은 장애학생들은, 대체로 자신이 가진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도피하려 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장애인들과 다르다고, 그러니 나를 장애라는 렌즈로 바라보지 말라고 외치고는 한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내가 오를 수 없는 계단, 읽을 수 없는 책, 들을 수 없는 강의 앞에 절망하며, 결국 남은 것은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수용하고, 이를 통해 분리된 세계를 연결할 강력한 도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직면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현실에 직접 대면하면서, 오히려 우리 몸에 새겨진 모든 의미들을 전도시키는 강력한 도전들이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나 역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외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내가 만약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굳이 외치지 않고서도 수많은 편견과 차별, 또는 편향된 구조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슈퍼맨이었다면 나는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정체화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오바마의 글이 장애인으로서, 또 장애인 가운데 운좋게도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된 나에게 주는 힘은, 그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할 만큼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으면서도 결국 다시 시카고의 흑인 빈민 지역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랜 방황 앞에 결국 자신이 흑인이며, 흑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케냐를 방문해 자신의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는 오랫동안 무덤 앞에 앉아서 울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마저 말라 버렸다. (....) 내가 누구이고, 또 내가 누구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지성이나 의무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p688)

정치인으로서 오바마가 앞으로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알 수 없다. 벌써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전 때의 발언과 달리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 금융자본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의 존재가 의미 있는 것은 단지 그가 대통령이라는 권력자의 지위에 올랐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존재가 주는 감흥은, 그가 오랜 내적 투쟁을 거쳐 결국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로부터 도피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새겨진 편견과 수많은 혼란들을 직시하면서 결국 자신을 둘러싼 흑과 백, 아프리카와 미국, 가난과 엘리트 문화의 세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자아를 완성해 나갔다는데 있는 것이다.

흑인에게 부여되었던 낙인만큼이나 장애인에게 부여된 낙인도 너무나 크고 무겁다. 게다가 장애는 인종과 달리 실제적인 물리적 불편함과 신체적 고통까지 유발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오히려 정면으로 내 몸의 정체성과 맞닥뜨리는 것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다는 점도 잘 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거부하고자 하는 유혹은 너무나 강하며, 우리 몸의 현실은 때로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이런 우리들에게 주어진‘꿈’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당당히 우리의 몸이 가진 정체성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찾아가 목 놓아 눈물을 흘리며 내 삶의 과정을 반추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오바마에게 그것이 아버지의 무덤이었다면, 나는 그것이 우리들 자신이었으면 좋겠다. 신, 부모, 또는 그 어떤 구원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 목 놓아 울 수 있는 존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내 책의 제목을 <우리 모두로부터의 꿈>이라고 붙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원영 (g-restoration@hanmail.net), 에이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