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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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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474회 작성일 09-08-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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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는 걸 즐기는 편이다. 그 이유를 찾자면,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열 살 때까지는 엄마 등에 업혀서 학교를 다녔다. 그 때까지 부모님은 내가 언젠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고, 그래서 휠체어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도 휠체어라는 무시무시한 쇠붙이보다 엄마 등이 편하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열 살 쯤에야 휠체어를 타기 시작했는데 혼자서 이동하는 것 자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약했기 때문에, 늘 곁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혼자라는 기억은 늘 혼자 ‘남겨져’ 누군가를 ‘기다리던’ 기억이었다. 빈 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던 기억, 방과 후 빈 교실에서 특별활동이 끝나는 친구를 기다리던 기억. 빈 집에서, 빈 교실에서 나는 혼자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가 ‘되기’를 꿈꿨다. 그 때 내가 늘 꿈꾸던 일은, 아주 소박하게도 혼자 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고 누구를 기다릴 필요 없이, 명동이든 신촌이든 사람이 많은 거리를,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다는 차갑고 도도한 표정으로, 그저, 하염없이, 걷는 것.

박김영희 님이 쓰신 ‘오렌지 다섯 개’라는 글이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나이 마흔 가까이에 처음 혼자 외출을 하셔서 오렌지 다섯 개를 사오셨다는 유명한 이야기. 떠올려보면 나도 혼자서 무언가를 처음 했던 기억이 있을 법한데 막상 그 순간을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다.

3년 전쯤 어떤 일인가에 크게 상처를 받아서, 하루 수업을 다 빼먹고 용산에 갔던 적이 있다. 용산역 앞마당에서 누군가의 선거유세를 보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파스타를 먹고, 혼자 커피를 마셨다. 어떤 일에 상처를 받았는지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매 순간 혼자였다는 것, 그래서 그 순간들만큼은 굉장히 자유로웠다는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운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만나 뵈러 차를 타고 혼자 모교에 갔던 적이 있다. 늘 엄마 혹은 친구들과 함께 다니던 그 길을 혼자 차를 타고 올라가서,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선생님을 기다렸다. 장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시는 선생님의 감회와 별개로, 그 학교의 빈 교실에서 꿈꾸던 차갑고 도도한 표정의 '혼자 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스로 장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렇게 혼자 다니기 스킬을 하나 둘 습득해나가고 있긴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인 여성이 혼자 놀기란 무척 궁상맞은 일인 것은 확실하다. 그 궁상맞음과 쪽팔림을 이겨내고 얻어낸 몇 가지 혼자 놀기 스킬을 공개해 보겠다.

일단 가장 낮은 레벨은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의식하지 말고 커피를 마시며 책이나 신문을 읽어주면 될 것이다. (선글라스에 노트북, 뉴욕 타임즈를 챙긴다면 된장남/된장녀 레벨까지 가능하다.) 약간 높은 레벨로는 혼자 밥 먹기가 있는데, 파스타 정도가 무난하다. 나의 최종 목표는 혼자 삼겹살을 먹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나면 혼자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다. 다만 티켓을 끊을 때 간혹 “혼자 오셨어요?”라고 물어보는 직원이 있는데 그럴 땐 쭈뼛대며 “네… 혼자… 왔어요…”라고 말하면, 스스로 혼자라는 걸 의식하고 있는 꼴이다. 직원의 질문이 놀랍다는 듯이, 아니 혼자라는 게 도대체 무슨 문제라도 되느냐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네, 혼잔데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을 가볍게 던져주시면 된다. 혼자 노래방에 간 적도 있다. 혼자 왔다고 했더니 콜라를 공짜로 챙겨주시던 주인아저씨는, 1시간 40분이나 서비스를 넣어주셨다. 나올 땐 목이 잠겼다. 그래서 이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물론 ‘혼자있기=자유’라는 공식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 다니면서도 원하지 않는 시선들 덕에 전혀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많을뿐더러,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이 더없이 자유로울 때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몸이 부자유스럽다 사실이 ‘장애인’과 ‘자유’ 혹은 ‘혼자’라는 단어들 사이를 어색하게 만드는 공식 자체에는 딴지를 걸고 싶다. 장애인은 불가피하게 혼자 남겨져야 하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힘들고,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들. (혼자 다니면서 무수하게 “보호자는 어디 계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이봐요, 제가 제 보호자라구요!”) 매 순간 그것들만큼 나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나는 어려운 말로 권리나 평등, 자유를 설명하고 주장할 정도로 멋있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원할 때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것, 혼자 남겨지지 않는 것, 간혹 자발적으로 혼자 ‘될 수’ 있는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유일하게)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빈 교실에서 슬프게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던 때에나, 그 때보다 아주 조금 자유로워진 지금도, 간절히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칼럼니스트 문영민 (saojung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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