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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탈시설 쟁점, 성공여부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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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혜진1 조회 1,447회 작성일 16-03-3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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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한국, 특히 서울시에서 발달장애인탈시설이 많이 논의 되고 있다. 작년 12월 장애인개발원과 서울시가 발표한 발달장애인 탈시설 계획안을 계기로 거주시설 운영법인, 자립생활지원센터, 장애 운동가, 복지 전문가와 학자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상황에 필자가 걱정하는 바를 말씀드리려 한다.

탈시설을 논하려면 먼저 시설이 무엇이고, 탈시설로부터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지 선진국에서 시설이라 함은 대체로 6명 이상이 사는 그룹홈으로부터 수백 명을 수용하는 대형시설을 포함한다.

이와 같이 거주단위에 사는 사람들의 숫자로 시설을 정의하는 것이 일반 통례이지만, 미국 발달장애인 자조단체 연합회에서 말하는 시설의 정의는 숫자 이외에 그들의 삶의 질과 인권적인 차원에서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다.

시설이란 ▲장애인만이 사는 곳 ▲세명 이상 자기들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사는 곳 ▲거주인이 침실이나 욕실을 잠그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곳 ▲운영진이 정한 식단과 취침시간을 강요하는 곳 ▲개인의 종교나 신앙생활을 강요하거나 제안하는 곳 ▲나를 보조할 사람을 내가 고르거나 바꿀 수 없는 곳 ▲성적 기호나 활동을 제한하는 곳 ▲내가 받는 보조나 스태프가 싫으면 내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곳 ▲전화나 인터넷의 사용을 제한하는 곳 ▲지역사회 생활이나 활동을 제약하는 곳.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시설 밖에 나와서 살고 있으면서 시설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캐나다의 발달장애 자조단체인 피플퍼스트를 창시한 발달장애인당사자인 패트워스씨는 시설이 무엇인가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시설은 발달장애인의 선택여지를 거부하고, 기회를 주지 않고, 일정 지역에 몰아붙이고, 격리하고 고립시킨다. 사람들이 격리되고, 컨트롤 받고, 선택여지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시설이다. 그곳에선 우리 맘대로 할수 있는 것이 없다. 시설은 삶 그 자체를 거부하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과 지역사회를 알고 서로 통하고 친구를 만들 기회를 거부한다. 시설은 우리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조차 박탈한다. 시설은 우리 발달장애인의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국의 과거 탈시설운동은 주로 신체장애인을 위한 것이었다. 신체장애인에게 지역사회에 거처를 마련해 주고 활동보조인의 보조와 정부의 소득지원 등으로 자립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신체장애인 탈시설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 각종 법이 제정됐고, 정부 정책이 만들어 졌다.

그러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탈시설 정책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위의 발달장애 당사자가 말하는 시설의 정의를 역으로 이해하면 된다.

즉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서비스와 지원을 받아가면서 지역사회에서 통합하고 참여하고 활동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장애가 있다고 해서 그들이 평생 시설에 살아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한국 국회가 인준한 유엔 장애인권리 선언문 참조)

발달장애인에게는 신체장애인과 달라서 자립생활이라는 것이 탈시설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서울시에서 시도해 본 장애인자립생활 훈련원이 시설 거주 발달장애인들에게 해당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각종 지원과 보조, 서비스를 해 줄 수 있는 인프라가 지역사회별로 짜여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인프라는 시설에서 나오는 발달장애인 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재가 장애인을 포함한, 그리고 장애의 경중을 막론하고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해당 되어야 한다. 재가 장애인도 가정의 사정이 변할 때 그들의 거주처가 바뀌게 될 것이며, 사회는 이를 위한 대비를 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설입소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시설 개편, 운영 주체, 시설의 입장 등 지금 한국에서 발달장애인탈시설에 있어서의 쟁점이 되고 있는 것들은 사실상 발달장애인탈시설의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다.

발달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지원하고 보조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 위주의 지원계획(PCP)인데, 이러한 지원계획은 장애등급제를 적용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서 재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혜택이 미치도록 하려면 현존하는 가족 지원을 포함한 장애 서비스 체제를 점검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 실정에 맞는 발달장애인과 가정을 돕고, 시설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질을 높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탈시설을 위한 논의와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서구의 탈시설의 운동의 역사는 40여년에 걸쳐 일어나고 있고 지금도 계속 그 양상이 변화 발전되어 가고 있다. 서울시의 발달장애인 탈시설 5개년 개획은 그대로 실행된다면 국가 재정의 낭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