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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인턴제' 통해 미래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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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이슬 조회 980회 작성일 15-06-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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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지난 4월부터 연말까지 ‘중증장애인인턴제’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에 있는 22개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인턴 1명씩, 총 22명의 중증장애인들은 월 137만2200원의 급여를 받으며 기획 및 회계부터 센터 특화사업 등 센터 업무 전반의 일들을 미리 경험해보고 있다.

“커피 드실래요? 차가운 것도 괜찮으세요?” 22명의 인턴 중 유일한 시각장애인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유주씨(26세, 시각1급)는 능숙한 모습으로 커피를 내밀었다. 곧바로 ‘동료상담가’란 직함이 박힌 명함을 전하는 그녀는 2달째 접어드는 인턴생활이 아주 만족스럽단다.

“오늘 국가인권위 장애인권강사 시험이라는데 공부를 안했다네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기기인 독서확대기를 들고 책을 읽는 그녀의 꿈은 ‘장애인권강사’란다. 하지만 그 꿈을 꾸기까지 과정이 길었다.

시각장애인에게 대학진학은 특수교육과, 사회복지학과 뿐인 줄 알았어요”

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그녀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간략했다. “비장애인과 같이 경쟁해야 한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반초등학교를 진학했던 그녀, 졸업 후 부산맹학교 3년의 중등부 생활을 거쳤다. 그 후 유주씨의 일상은 집뿐이었다. 20살 때까지 바깥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 그녀는 검정고시를 통해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는데.

“맹학교에 다니면 사회복지학과 특수교육과에 가게끔 교육을 해요. 뚜렷하게 무엇이 되고 싶은 건 없었고 ‘아, 그냥 시각장애인이고 직업을 가질 때 특수교사나 사회복지사를 할 수 있구나’란 생각이었죠. 선생님은 어디로 보나 좋은 직업이고 영어도 좋아했으니 그냥 그렇게 진학한 거죠.”

어릴 적 ‘시각장애인’이라는 자체는 그녀에게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나가 놀지 못했지만 공부를 하거나 이동하거나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대학에 와서 ‘틀린그림찾기’라는 동아리개념의 비영리 활동을 하면서 장애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됐다는데.

물론, 장애인권강사라는 직업을 심히 고려하진 않았다. “상담이 좋아서요” 상담관련 대학원 진학과 임용고시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우리동작IL센터에서의 인연으로 새로운 꿈까지 찾았다.

“친구를 통해 센터 소장님을 알게 됐는데 대학교재를 확대도서를 만들어주거나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끔 해주는 지원을 무료로 해주셨어요. 자주 들리고 하다보니까 너무 즐거운 공간이었어요. 장애인권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강윤택 소장의 권유로 중증장애인인턴인턴 공고에 지원한 그녀, 많은 지원자 중에서 유일하게 강 소장의 마음을 잡아끈 것은 그녀의 뚜렷한 정체성이었다. 20살 이후로 활동한 대학 자치단위 활동과 그녀가 직접 피부로 느낀 장애차별은 장애인권강사로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해줬다.

“제가 체감하는 장애차별은 인식이에요. 저는 시각장애1급이지만 그중 경한 편이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어쩌면 장애인이라는 것을 몰라요. 그런데 제가 시각장애인 복지카드를 떨어뜨릴 때와 이화여대 학생카드를 떨어뜨렸을 때의 사람들 태도는 달라요. 시각장애인임을 밝혔을 때의 인식이 너무 다르니까 그 인식을 그냥 넘겨서는 안되겠더라고요.”

IL센터에서 일하며 그녀의 성격도 달라졌다. 대학오기전 가족들과 집에서만, 대학에 와서도 학교에서만 내내 있던 그녀, 센터에 일하면서부터 퇴근하기도 싫단다. “6시에 퇴근하면 뭐해요?”라는 질문에 “사실은요~”라며 망설이던 그녀는 “퇴근하기 싫어서 센터에 있어요”라며 환하게 웃는 모습, 같은 직장인으로써는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이해하기 힘든 건 또 있다. “전 살면서 애교를 떨어본적이 없어요”라며 환히 웃는 유주씨의 모습에선 낯가림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게 너무 기쁘다”는 그녀는 살면서 장애인을 이처럼 많이 만나본적도 없다는데.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화사업이 많은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용자의 90%가 시각장애인이다. 때문에 그녀가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돕기도, 배우면서 보람을 느낀단다.

“예전에는 이 친구가 안 보이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시선이었거든요. 맹학교 생활 외에는 시각장애인들을 많이 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싫었어요. 근데 여기에서는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 기분이 좋은 거예요.”

2달차에 접어든 센터 생활을 통해 출장도 나가보고, 연수도 받고, 그녀는 그저 싱글벙글 즐겁기만 하다. 처음으로 진행했던 중학교 인권강의는 날짜까지 잊지 못한다. 그녀에게 ‘중증장애인인턴제’는 성격도, 꿈도 찾게 해준 귀중한 시간들이다.

“제가 센터에서 일하면서 하고 싶은 분야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 못했는데 인권강사의 꿈을 꾸게 돼서 너무 기뻐요. 인턴기간이 끝난 후에도 소장님께서 정규직으로 채용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센터의 주축이 되고 싶어요.”

그녀와 아빠와 딸처럼 가장 친하게 지낸다던 강윤택 소장도 “장애인들이 학교에서는 직장에서 필요한 것을 배울 기회가 없다. 그냥 뽑아서는 직원과의 융화가 힘들다. 인턴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중증장애인인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