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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아이들의 무한도전 "기적의 하모니 꼭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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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976회 작성일 09-06-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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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로 숨을 깊게 들이 쉬고 다 같이 도~ 레~ 미~"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2가 파라다이스 복지재단 5층 학습센터. 하얀 티셔츠에 노란색 스카프를 맨 20여명의 아이들이 지휘자 선생님을 따라 기본 음계와 호흡법을 익히고 있다.

어미 찾는 제비 새끼들처럼 입을 좍좍 벌려 소리를 내는 아이들, 자세히 보니 모두들 한 쪽 귀에 이어폰 비슷한 장치가 걸려 있다.

청각장애 아동들로만 구성된 '아이소리 앙상블 합창단'의 첫 공식 연습 장면이다. 단원들은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났으나 인공와우(달팽이관에 삽입, 전기신호를 통해 소리를 인지하도록 돕는 장치) 수술을 통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13세 미만의 아이들이다. 지난 3, 4월 인터넷 공모를 거쳐 초등학생 18명, 유치원생 4명 등 22명이 정식 단원으로 뽑혔다.


이날은 아이소리 합창단의 발대식 날이다. 음표가 곱게 그려진 단복을 차려 입고 발대식에 참석한 아이들 표정에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단원들을 대표해 고사리 같은 손을 들고 또박또박 큰 목소리로 선서를 한 정지훈(10)군은 "노래를 좋아했는데 친구들하고 같이 합창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충남 공주에서 온 이우람(10)군의 어머니 오은주(33)씨는 "서울에서 멀기는 하지만 합창단 활동이 아들의 재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덕에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이지만, 합창 도전은 크나 큰 모험이다. 현재 인공와우 기술이 500~6,000㎐의 음성 인식이 맞춰져 있어 100~10,000㎐까지 주파수가 상대적으로 넓은 음역을 따라 가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정확한 박자와 음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화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합창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재단이 이런 '모험'에 나서기까지는 최은경 복지사업팀장의 힘이 컸다. 청각장애인 교육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최 팀장은 "전공 덕에 청각장애 아동들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이들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합창단을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합창단 활동은 아이들의 재활 치료에 어려움을 겪어온 부모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인공와우 수술이 국내에 도입된 2000년대 초만 해도 수술 비용이 2,500만~3,000만원에 달해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2005년부터 인공와우 수술도 의료보험이 적용돼 수술비용은 250만원 정도로 낮아졌지만, 평생 인공와우를 끼고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보험혜택이 없는 부속품 교체, 수리 등 비용은 여전히 큰 부담이다. 더욱이 재활 치료는 연간 300만원 이상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프로그램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국내 최초의 청각장애 아동 합창단은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청각장애 아동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쳐본 음악교사가 거의 없는 탓이었다. 하지만 뜻을 품자 길이 열렸다.

성악을 전공한 허양(48) 목사가 소식을 듣고 선뜻 지휘봉을 잡겠다고 나섰다. 최 팀장의 오랜 친구로 피아노를 전공한 오미선(39ㆍ여)씨도 반주를 맡겠다고 나서 정식 합창단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주변의 시선은 아직 반신반의다. 한 청각장애 전문가는 "청각장애인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가창능력 개발은 장애아동의 청각 정보, 언어 능력 등에 따라 개인간 편차가 커 합창은 특히 어려운 도전"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아이소리 단원들과 부모들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합창단의 유일한 남매인 진채현(9ㆍ여)양과 성준(5)군의 어머니 정은숙(35)씨는 "주변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과연 합창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있지만 이런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큰 선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은주씨도 "그동안 노래를 좋아하는 우람이가 박자에도 안 맞는 노래를 할 때 안쓰러웠다"며 "체계적인 가창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2주 전부터 가창력 개발의 기초인 호흡법 훈련을 시작한 단원들은 앞으로 매주 토요일 음악재활 활동과 노래 연습을 병행한다. 연말에는 6개월간 갈고 닦은 솜씨를 뽐내는 작은 공연도 열 계획이다.

"아이들이 합창 공연을 성공한다면 그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될 거에요." 무대에 설 아들을 그려보며 벌써부터 상기된 표정을 짓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람이는 우렁찬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노래가 정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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