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월급 타면 부모님께 내복 사드리는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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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5-2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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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에 출근하면서도 눈 화장과 볼 터치, 립스틱까지 빠뜨리지 않는 이유를 묻자 오인선 씨(25)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8일부터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청소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중증지적장애 3급인 오 씨는 5년 전 아버지가 실직한 후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해력이 떨어지고 말이 어눌해 아르바이트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어렵사리 청소도우미 일을 구한 오 씨는 퇴근 후 드럼 학원에 가는 것이 낙이다. 그는 “박자를 놓쳐서 선생님한테 혼이 나지만 앞으로 드러머가 돼서 복지관에 있는 애들한테 드럼을 가르쳐 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 씨를 포함해 3명의 중증지적장애 여성이 이곳에서 청소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청소도우미’ 사업에 지원해 선발됐다. 청소도우미 사업은 한국장애인개발원 주최 장애인 일자리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지난해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이룸센터는 한국장애인개발원 소유 건물이다.
이들 3명은 모두 지능지수 50∼70 사이의 3급 중증지적장애인이다. 주 5일 오전 6시 30분부터 4시간 일하고 월 59만 원을 받는다. 중증지적장애를 가진 여성이 공공기관에 취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경애 씨(38)는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렵게 두 아들을 길러왔지만 생활이 점점 어려워져 결국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맡기고 취업에 나섰다. 정 씨는 “돈을 벌어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강미소 씨(24)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 강 씨의 여동생은 출근 전 그에게 ‘152’라는 숫자를 써주며 “이렇게 생긴 게 써있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 설명해 줬다. 강 씨는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 사주는 거래요”라며 첫 월급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지적장애여성의 취업률은 36%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은 단기 아르바이트다. 박영순 한국장애인개발원 홍보팀장은 “취업난 속에서 장애인은 취업이 힘들고 여성 지적장애인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이용흥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드는 데 공공기관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건물 관리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우리가 추천하는 장애인을 청소도우미로 써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말했다.
단기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이들 3명은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한 것이 너무 기쁘다”며 “1년마다 새로 계약하는데 내년에도 꼭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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