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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2명에 빛을 주고 떠난 뇌성마비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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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1,907회 작성일 09-05-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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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를 앓던 스무 살 장애인 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부모가 아들의 안구를 기증해 시력을 잃은 사람 두 명에게 빛을 되찾아줬다.

지난 2일 대전에 사는 양모(48·교사)씨 부부의 집에서 장남 호진(20)씨가 폐렴으로 숨졌다. 인근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보름 넘게 입원했다가 의료진이 "희망이 없으니 임종을 준비하라"고 해서 집으로 퇴원한 지 하루 만이었다.

호진씨는 젖먹이 때 뇌성마비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 양씨는 "갓 태어난 아들이 이유 없이 자주 울고, 좀 자라서는 기는 모양이 이상했다"며 "병원에 데려갔더니 '분만 과정에서 머리가 눌렸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호진씨의 어머니(47)는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지역 병원을 순례했다. 용하다는 민간 요법은 다 써 봤다고 한다.

그래도 아들은 스무 살이 되도록 혼자 걷지도, 서지도 못했다. 손가락 하나 자기 맘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말도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는 날까지 제대로 발음한 말은 '엄마'와 '아파', 두 단어뿐이었다"고 했다.

침대에 누운 채 청년이 된 호진씨는 지난해부터 소화기능과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는 올 4월 폐렴 증상으로 대전 건양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의사는 부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죽음을 앞둔 아들의 육체를 수발하면서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아파하는 다른 많은 환자를 바라봤다. 장기 기증을 결심한 것이 이때였다. 호진씨의 아버지는 "아내가 '아들이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고 했다.

호진씨의 몸은 장기 대부분이 제 구실을 못하는 상태였다. 남에게 기증할 수 있는 것은 두 눈뿐이었다. 호진씨의 아버지는 "평소 아들이 맑은 눈으로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며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말했다.

사망 직후 호진씨의 유해는 대전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이 호진씨 두 눈의 각막을 거둬 이튿날인 지난 3일 60대 남성 2명에게 한쪽씩 이식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각막을 받은 이들이 "내가 받은 은혜를 다시 세상에 베풀고 싶다"며 장기 기증을 약속했다고 병원은 전했다.

인터뷰를 사양한 호진씨의 어머니는 남편을 통해 "하늘나라에서는 아들이 아프지 말고 자유롭게 살기 바란다"고 전했다.

전현석 기자 winwin@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