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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결혼, 특별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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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회 2,002회 작성일 09-05-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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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집에 인사갈 때, 장애 심할수록 당당하게!
연애 성공방법? “진심은 통하는 법, 당당해져요”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 청주시에 살고 있는 뇌병변 1급 장애를 지니고 있는 조우리라고 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사랑, 결혼, 뭐 틀린 점이 있을까요? 단지 조금 사랑의 방식이 다를 뿐이죠. 틀리다와 다르다는 엄연히 다릅니다. 국어 시간이 아니기에 저 둘의 차이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저는 현재 17개월 된 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자 그럼, 저의 러브 스토리 속으로 한번 빠져 들어가 볼까요?

제 이름은 조.우.리. 나이 23살. 청주시에 있는 충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재학 중 이었습니다. 저는 교정복지쪽으로 관심이 많았기에 그쪽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그 쪽으로 아시는 분이 계셔서 청주 소년원으로 상담 실습을 어렵게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첫 번째 실습을 갔을 때 너무나 예쁘면서 특이한 이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이.겨.라. 지금은 저의 팔과 다리가 되어주고 있는 남편입니다. 두 번째 실습을 갔을 땐 저희 남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참고로 저희 남편은 저보다 3살 연하랍니다. 능력 좋다고요? 실은 제가 좀 되거든요. 몸매도, 미모도, 지성도….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두 번째 실습을 가서 남편이 보이지 않기에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충주로 이송됐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있길 바라며 잊고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반 학기를 실습을 다녔고 4학년이 되던 해에 청주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님께서 초등학교 선배님이신데 자립에 와서 공부도 배우면서 졸업하면 상근자로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셔서 선배도 도와드리고 돈도 벌겸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4학년 동안 1주일에 한 번 씩 자립으로 실습을 나갔고 갈 때마다 컴퓨터 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희 남편이었죠.

저는 그 사실을 연애하던 중 뒤늦게 알았고요. 처음 남편과 친해지게 된 동기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영화 검색을 하다가 <광식이 동생 광태>를 보았고 광태를 보는 순간 남편을 보며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던 바로 그 날이죠. 일이 끝나고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자기도 약속이 있어서 그 쪽으로 간다며 데려다 주겠다고 함께 나왔습니다. 몇 대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는 동안에도 평소에는 그렇게 조용하던 사람이 유난히 말이 많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어! 저기 집 가는 버스 온다”라고 말을 하면 ‘저 버스 아니에요’하고 보내 버리고 보내 버리고를 3~4번 정도를 하고서야 집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그리하여 고마운 마음에 먼저 다음 약속을 데려다 주고 갈 때 제가 정했습니다. “주말에 별 약속 없으면 밥 사줄게요. 밥 먹을래요?”라고. 그리하여 다음날부터 누가 먼저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사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밥 먹으면서 솔직히 고백할게 있다며 먼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사실은 자기가 언젠가 충북대학교에서 누나를 보게 됐는데 걸어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하늘이 노랗고 빙빙 돌면서 누나한테는 막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그랬다고…. 그런데 몇 달 후에 보니 그 사람이 자기와 한 공간에서 매일매일 일을 하고 있더라고…. 용기가 없어 차마 이야기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한다고 혼자서 첫 눈에 반한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던지 6개월 만에 고백을 하네요, 하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감사했습니다. 솔직히 그 전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거나 연애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해보았지만 인간 조우리를 좋아하지만 그 안에 조우리의 몸의 장애는 이해하고 인정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믿기로 하였고 저희는 2년 정도를 서로를 아끼고 믿어주며 열심히 사랑을 하였습니다. 데이트코스는 제일 무리없이 걸을 수 있는 학교 길이었고요. 저희는 비장애인들과 별 다를 것 없이 봄에는 벚꽃 구경도 가고 여름에는 기차타고 친구들이랑 바다로 여행도 가고 가을에는 수목원도 가고 겨울에는 집 앞에다 눈사람도 만들며 영화도 많이 보고 커피숍도 많이 갔습니다. 한번은 물어보았어요. 나랑 다니기 안 힘드냐고 그랬더니 그러더군요. 자기는 너를 만나면서 한 번도 동정심으로 불쌍해서 함께 하거나 책임감으로 만난 적 없다고 그냥 인간 조우리가 좋기 때문에 장애는 덤으로 오는 선물과 같다고….(너무 멋있죠?)

첫 키스 하기라…. 제 대학 동기들과 졸업을 하고 오래간만에 만나 밥을 먹고 2차로 소주한잔을 하고 3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다들 먼저 갔는데 남편이 워낙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해서 보너스 넣어주는 대로 다 부르다가 마지막 노래 부르다가 서로 눈 맞아 했던 기억이…. 사귄지 3주정도 되어서….

애인 집에 인사갈 때 지켜야할 수칙은 장애가 심할수록 당당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움츠리지 말고 할말 또박 또박 다 하고 예의는 필수! 그리고 옷은 좋은 옷보다는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이 좋습니다. 저희는 시댁은 2년 정도 사귀다 아이가 먼저 생겨 결혼 승낙 받으러 처음 가보고 못 가보았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남편이 어렸을 적 이혼을 하셔서 집을 나가셔서 연락이 안 되고요. 시아버지는 결혼 승낙 받으러 가던 날 이후로 남편의 전화도 제 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찾아뵙고 싶지만 이사를 가셔서 주소를 알지도 못하고 다른 친척분들께서는 아예 내미는 손도 잘라 버리는 지경입니다. 친정 쪽에서도 아이 낳고 1~2개월 정도 까지는 왕래도 없었고 연락도 없었지만 결혼식을 한 1달 앞둔 뒤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결혼식은 결혼식, 웨딩촬영, 여행까지 모두 후원을 받아 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습니다. 음악회 안에 있는 결혼식. 결혼식 후엔 친정과는 예전처럼 돌아갔습니다.

엄마 아빠께서도 사위가 아닌 아들처럼 잘해주시고 남편도 표현은 못하지만 친부모님처럼 잘 모시고 그렇게 행복하게 지낸답니다. 어떻게 연애에 성공했냐고 질문을 하신다면 답은 하나죠.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그리고 더불어 당당해지자고!”

저희 아들 이름은 이동균입니다. 저희 가족 이름을 모두 합치면 한 문장이 만들어집니다. “우리 동균 이겨라!” 이 글을 읽는 단 한명의 분이 계시더라도 조금이나마 용기와 희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에이블뉴스, 기고/조우리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