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 아들의 첫사랑이 끝날때쯤 책이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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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5-1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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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초등학생인 장애인 총각 성주민(27·정신지체3급)씨가 첫사랑에 빠졌다. 경기도 광주의 한 복지시설에 가서 일과 치료를 겸해 박스를 접다가, 작업을 지도하던 예쁜 여선생님에게 푹 빠진 것이다. 성씨는 집에 돌아와서 쉴 새 없이 선생님 이름을 되뇌는가 하면, 밤에는 침대에 앉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보다 못한 어머니 정순영(53·ING생명 이사)씨가 코치로 나섰다. 주말마다 아들과 눈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좋아한다고 껴안으면 안 돼. 선생님이 기뻐하도록 의젓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알지?"
성씨의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4월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간 것이다. 성씨는 한 달 가까이 풀죽어 지냈다. 밥도 만날 남기고 어머니랑 얘기하다 엉엉 울기도 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가슴이 쪼개지는 듯했지만 한편으론 남들보다 늦된 아들이 첫사랑을 하는구나 싶어 기뻤다"고 했다.
아들 성씨의 첫사랑이 끝나던 지난달, 아들을 지켜보며 어머니 정씨가 번역한 책이 나왔다. '어른이 되게 도와주세요'(카린 멜버그 슈비어 지음·커뮤니티)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지침서다. 지적장애아가 타인과 관계를 맺도록 돕는 법부터 시작해 연애·성생활·결혼까지 다루고 있다.
정씨는 "누구나 어른이 되면 연애도 하고 성생활도 하고 결혼도 하게 마련인데,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적장애인이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들을 키울 때 장애인 교육에 대한 책이 드물고 성교육에 대한 책은 더욱 귀해 어려움이 많았어요. 이런 책을 조금 더 일찍 봤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에, 나처럼 장애아를 키우는 다른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번역했어요."
정씨는 "장애인도 자기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연애도 하고 결혼 생활도 잘할 수 있다"며 "아들이 다니는 시설에도 3~4쌍의 장애인 커플이 있다"고 했다. 아들이 자신과 비슷한 여자친구와 만나 또 다른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걸 보는 것이 정씨의 꿈이다. 정씨는 "자식이 장애인이건 아니건 부모 마음은 똑같다"며 "장애인 자식들끼리 손만 잡고 다녀도, 부모들은 '쟤들, 어떻게 결혼시킬까'라고 앞선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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