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출산 두려웠지만 사는 건 다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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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09-04-1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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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장애인 중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부분인 육아와 장애의 유전문제 등이 실제 삶을 통해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출산을 경험한 기혼 여성장애인의 삶을 통해 살펴보았다.
장애인부모 위한 유치원이 있었으면…”
임미정 씨 / 지체장애 2급
“우리 가영이가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7개월 된 가영이 어머니 임미정 씨(41)는 손발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으며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다.
미정 씨는 올해 결혼한 지 3년째이다. 30년 지기 친구의 어머니로부터 남편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현재 인천시 남동공단에서 생산직 업무를 맡고 있다. 남편은 지적장애 2급으로 생활에 지장이 없는 정도라고. 미정 씨는 처음 남편을 만났을 당시에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남편과도 결혼할 마음은 없었어요.”
미정 씨는 친정아버지와 주위 지인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결혼에 대해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물론 남편의 착하고 단순함에 호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라고.
“양쪽 모두 장애가 있어서 양가 집안 모두 반대 없이 잘 이해해 주셨어요. 저도 18년 동안 중풍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신 친정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기에 결혼 후 살림살이에 대한 걱정은 없었고요.”
미정 씨는 결혼 후 아이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장애 때문에 부모가 아이에게 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가 생겼고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금은 너무도 소중한 예쁜 딸 가영이를 얻게 되었다.
“임신 중에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어요. 가영이를 가졌을 때 입덧도 없었고 식성도 좋아져서 먹기도 잘했거든요. 저는 자연분만으로 가영이를 낳았는데 진통 2시간 만에 아이가 나왔어요. 초산 치고는 빠른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미정 씨는 가영이를 낳은 후부터 정부의 도움을 받아 산후도우미, 가사도우미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금은 인천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해 가사도우미가 1주일에 세 번, 하루 네 시간씩 도움을 주고 있어 가영이를 키우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가사도우미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지 막막해요. 아이가 커가면서 움직임도 많아지는데 제가 혼자 돌보기에는 힘에 부치거든요. 한편으로는 다른 여성장애인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많을 텐데, 저만 편한 게 아닌가 싶어서요. 정부 예산이 많이 줄어들어 실질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적다고 하시더라구요.”
미정 씨는 가영이가 자라면서 장애인인 부모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할 때 받을 심리적 충격이 가장 걱정된다고 한다.
“가영이를 비롯한 장애인부모를 둔 아이를 위한 유치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반 유치원을 보면 부모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저도 물론 참여하고 싶지만 대부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해서 장애인부모는 함께 할 수가 없어요. 만약 장애인부모를 위한 유치원이 있다면 가영이가 장애인부모를 받아들이는데도 도움이 되고, 부모들도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시련을 뛰어넘는 사랑
이혜연(가명) 씨 / 지체장애 2급
선천적 구루병을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김혜연(가명·36)씨는 올해로 결혼 10년차의 주부이다. 남편은 혜연 씨가 활동하던 모 자원봉사센터(이하 센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중 만나게 됐다.
혜연 씨는 당시 센터에서 깔끔한 재정관리와 업무처리로 센터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남편 또한 열심히 일하는 혜연 씨의 모습에 반했다고. 처음 좋아한다는 남편의 고백을 들었을 때 혜연 씨는 거절했다고 한다.
“장애 때문에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렇게 수개월을 보내는 동안 남편의 진심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러나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나서부터 혜연 씨는 적지 않은 시련을 겪어야만했다고 한다.
“남편은 비장애인이거든요. 그리고 2남 2녀 중 장남이고요.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들이 심하게 반대를 했어요. 교제하는 것을 알고 나서 얼마 뒤에 남편의 누나와 동생이 집으로 찾아왔더라고요. 헤어지라면서 집안에 있는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그런 많은 힘든 일들을 겪었어요.” 결국 혜연 씨와 남편은 시댁의 반대에 지쳐 도망치듯 연고지를 떠났다고 한다.
“그 뒤로는 이 곳 저 곳 많이도 이사를 했어요. 언니네 집에도 갔다가 서울에서도 살다가 정신없었지요. 그러다가 인천에 와서 정착하고 나서 기다리던 아이가 생겼어요.”
혜연 씨는 갑작스런 임신소식을 듣고 나서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아이가 자신의 병을 유전 받아 힘든 삶을 살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임신 기간에는 외로움과 싸우는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 저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어요. 시어머니는 여전히 반대하고 계셔서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고 남편은 직장을 나가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몸이 불편한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죠.”
이제 15개월이 된 아들 지훈(가명)이는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났다. 병원의 권유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으나 아이가 너무 작아 2주정도 인큐베이터에 있어야 했다고. 지훈이는 엄마의 병을 유전 받았다. 그러나 구루병은 어린 시절부터 약으로 치료하면 낫는 병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손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다행히 복지관을 통해 가사도우미 지원을 받게 돼서 육아가 조금은 수월해졌어요.” 혜연 씨는 가사도우미가 없었다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 막막했을 것이라며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원받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재는 재정적인 문제로 한 가정이 장기적인 지원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성장애인이 육아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혜연 씨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려는 여성장애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저도 결혼 전에는 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살다보면 일반 가정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만약 몸이 불편한 아이를 낳게 되더라도 그런 아이를 보면서 울고 웃는 건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또 건강한 아이를 낳는 장애인들도 많으니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지체장애1급 임희숙 씨. ⓒ장애인생활신문
그렇게 다들 살아가는 것
임희숙 씨 / 지체장애1급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임희숙 씨(48)는 8살 된 딸 선희를 둔 결혼 9년차 주부다. 중매로 만난 남편과 교재기간 4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 남편은 어렸을 때 넘어져 척추장애를 가지고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어요. 특별히 교재를 했던 경험도 없었고 이성간의 만남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러나 희숙 씨는 따뜻한 시어머니 덕분에 결혼에 대한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
희숙 씨는 어렸을 때 넘어지면서 다리가 한 번 부러진 뒤로 계속 뼈가 부러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18살 때 병원에서 골형성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지금은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다.
“결혼했을 때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아이가 없다고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선희를 가지게 됐구요.”
희숙 씨는 임신했을 때 병원에서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 임신인 것 같아 병원을 찾았을 때는 임신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피검사 상으로는 임신이 맞는데 제가 자궁이 없다는 말만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이도 있고 몸도 아픈데 아이를 꼭 나아야겠냐는 식으로….”
우여곡절 끝에 장애여성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모 의사를 만나게 됐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수 개월간 검사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임신 7개월이 됐을 때 아이가 희숙 씨와 같은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간이었어요. 저는 제 병이 유전이라는 걸 몰랐거든요. 저희 형제들 모두 건강하고 저만 아파서 유전병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요. 선희는 8개월 반 만에 태어났어요. 그리고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느라… 괴로운 시간 이었어요.”
선희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까지 다리 수술만 십여 차례 받았다고. “여러 차례 수술했지만 선희는 잘 걷지 못해요. 혼자 앉는 것도 어렵고요. 수술한 만큼 몸이 많이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희숙 씨는 장애인이면서 장애아이를 키우는 게 참 힘든 일이라고 말한다.
“요즘에는 활동보조인이 주가 되다보니 자원봉사가 아니라 조금 각박해진 느낌이에요. 하루에 한 두 시간이라도 봉사자가 와서 아이를 지도해줬으면 좋겠어요. 장애인들은 늦게 결혼하는 사람이 많아 엄마와 아이의 나이 차가 크거든요. 조금 젊은 사람이 와서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희는 병 때문에 밖에 나가서 마음껏 놀지 못하거든요. 복지관에 좋은 프로그램이 많지만 밖을 나갈 수 없는 우리 아이에게는 맞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안타까워요.”
결혼을 후회한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희숙 씨는 크게 웃으며 물론 있다고 답한다. “가장 그리운 건 자유죠. 결혼을 하고 나니 그 자유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혼이 동경의 대상이 되죠. 그렇지만 해본 사람은 안한 사람의 자유로운 생활을 보고 동경해요. 그냥 그렇게 다들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장애인생활신문 박지연 기자 / 에이블뉴스 제휴사
장애인생활신문 (handicapi@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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